보충역의 의무복무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
2025년 4월 8일 작성 2026년 3월 3일 최종 수정 및 게시
저는 지난 23개월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습니다. 편입까지 3개월의 인턴 기간을 거쳤으니 총 26개월을 근무한 셈입니다. 이전에 작성해두고 올리지 못했던 글을 이제라도 공유하려 합니다.
서론: 글을 작성하는 이유
나는 이 글을 게시할 계획이다. 지금은 신분상 불이익이나 제약이 있어 올리지 않지만. 2026년 3월 3일에 나는 이 글을 게시할 것이다.
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누군가 가르쳐줄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진심으로, 우리 보충역 제도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충역 의무복무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
나는 보충역에 기초군사훈련/예비군훈련을 제외한 의무 부과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통해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법이 생긴 문화적 요인을 나름대로 짚어보았다.
보충역이란 법적으로는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으나, 현역병에 편입되지 않고 유사시에 현역병으로 충당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소집 및 훈련에 임하는 병력”을 말한다. 대략 10% 내외의 남성이 보충역 판정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군생활을 하기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된다.
보충역 판정을 받으면 보통 사회복무요원(흔히 말하는 '공익')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다. 3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행정기관, 요양시설이나 몇몇 중소기업 등 병무청이 지정한 비군사적인 복무지에서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일하는 것이다.
1. 징병제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
징병제의 도입 목적을 고려한다면 징병된 인력은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옳다. 특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 참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북한의 전쟁 위협 때문에 징병제를 시행한다. 북한의 전쟁 위협은 국민의 삶과 국가 시스템에 큰 위험요소이므로, 전쟁 억제를 위해 대규모의 군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보충역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국방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은 군에서 복무하지 않는다. 행정적으로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다. 예를 들어 군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군사재판도 받지 않는다.
우리는 요양시설에서 짐을 옮기고, 관공서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길을 안내하고, 민간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고치기 위해 징병제를 시행한 것인가?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분류시킨 보충역 인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고 국군이 강해지지 않는다. 보충역 인원을 비군사적 업무에 복무시킨다는 제도에는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2.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며, 양질의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
나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처럼 '저렴한 노동자'의 공급이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훌륭한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해 임금, 복리후생, 근무환경, 조직문화 등 다방면으로 경쟁한다. 노동시장에서 매력적인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영입함으로서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합격시킨 근로자가 경쟁 회사를 선택하거나 퇴사율이 너무 높다면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진다.
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산업기능요원 채용 시장에는 병무청이 허용한 기업들만 참여한다. 즉, 대부분의 기업은 산업기능요원을 채용할 수 없으므로 대기업을 비롯한 유력 경쟁자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구직자는 을의 위치를 자처하고 있어서 퇴사를 하지 않고, 부당한 처우나 갑질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퇴사율이 높은 회사라도 별다른 근무환경 개선 없이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활용한 운영이 가능하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산업기능요원이 기업 입장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1) 복무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장기 근속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2) 복무자들의 주 목표는 복무 기간을 채우는 것이므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책임감이 약하다. (3) 별도로 복무 관리와 서류 작업 등 운영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마이너스다.
결국 산업기능요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회사는 (1) 일반 직원의 근속 기간이 23개월보다 짧거나 비슷하며 (2) 책임감이 약한 근로자라도 상관없이 필요한 곳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산업기능요원을 주로 채용할 것이라면 (3) 복무 관리의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이런 기업은 근로자의 능력이 아닌 노력만 착취하는 데 능숙하며 흔히 '블랙 기업'이라 불린다. 이들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기형적인 제도 덕분에 근로자를 착취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시장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지 않는다.
특정 기업 및 기관이 국가의 병역 자원을 횡령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둔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에게 저렴한 노동자를 무한정 공급하면 '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가 가능하다는 괴상한 발상이다. 산업기능요원을 뽑는 블랙기업과, 규모가 너무 작아 병역지정업체가 되지 못한 신흥 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몇몇 기업을 돕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착취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
3. 현역 군인의 '박탈감'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 고통의 평준화
내가 생각하기에 보충역 관련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현역 군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한 이상 개인의 희생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를 위해 자기 인생을 수 년간 희생했는데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씨가 보충역에게 튀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
”“” 산업기능요원은 특혜를 받고 있다. 일반 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려 하지 마라. 병무청을 비롯해 일반적인 사회인들, 심지어는 옆에 앉은 동료들도 여러분이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우를 바란다면 신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여럿 민원을 넣는다. 그러니 눈높이를 동료 근로자가 아니라 현역 군인 및 사회복무요원들 기준에 맞춰라. 그보다 편하게 있을 생각하지 마라. “””
2024년 6월 12일에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산업기능요원 신규 편입 교육 도중 들은 말이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가 있더라도, 현역 군인보다는 편할 것이니 더 많은 '특혜'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군인이 지하철 앉아서 간다고 민원을 넣으면 주의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는 군대처럼, 산업기능요원이 편히 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병무청은 더 불편하게 있도록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무하는 도중 “한 달 일하면 하루 연차도 쓰고, 출퇴근도 하고, 직장인 월급을 받는다니 좋겠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한 달 일하면 최소 하루는 연차를 쓸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일을 하면 급여를 받는 것은 정말 기본이다.
그렇다. 복무자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특혜'이며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살 정도의 일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나은 환경에서 복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특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희생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명분도, 사회적 이익도 불분명한 희생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부연구생을 하고,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26개월을 '월급 안 밀려서 부러운 직장'에서 보냈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
현역 군인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보충역에 의무 부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역 장병들은 군대에서 수 년간 헌신하는데, 보충역은 기초군사교육만 수료한다면 박탈감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1) 그래서 지금은 박탈감이 없는가?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복무기간이 긴데, 이 정도면 충분히 박탈감이 없겠는가? (2) 과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인가?
결론
나는 보충역 자원에 대해서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등 다년간의 복무를 요구하는 제도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퇴사하지 못하는 근로자로 지낸 791일간 수백 번 고민하여 내린 일관된 결론이다. 징병제의 목적에 맞게, 건강상 가능한 인원은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이외의 의무는 불필요하다.
우리의 보충역 관련 제도는 '국방의 의무'라는 그럴싸한 허울 아래 착취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실은 일부 기관 및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특혜'와 '꿀'은 근무환경의 개선 없이도 저렴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특정 시설, 기업, 기관에게 주어진 것이다. 국가는 이들이 병역 자원을 마음껏 횡령할 수 있도록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이나 대가를 묻지 않는다. 그 결과 노동시장이 왜곡되고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는 등 암묵적인 비용을 사회 구성원 전부가 나누어 지불하고 있다.
현역 군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보충역도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복무자의 희생과 헌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친구들과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떤 부대/어떤 보직'은 꿀이니, 가능하면 거기로 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괜찮은 선택지가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이지만, 과연 그 곳이 정말로 달콤한 꿀 같을까? 자기 삶과 자유를 몇 년간 희생하는 사람이 진정 꿀맛같이 달달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