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

작성: 2026년 7월 22일

시계 이야기

2022년 초, 내가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대학교 입학 선물이라며 손목시계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여러 제품을 찾아서 보내주셨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시계가 없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시계를 알아보기로 했다.

시계를 고르면서 내 취향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시계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브랜드가 중요한가? 메탈이랑 가죽 중엔 뭐가 좋을까? 원래라면 그냥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을 그대로 썼을텐데(컴퓨터 제외), 내가 직접, 내 선호를 반영하여 비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처음 행사한 자유의 경험이었다.

내가 고른 시계는 어머니가 주신 선택지와는 많이 달랐다. 가격대도 훨씬 저렴했고, 무엇보다도 꽤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었다. 어머니는 짐짓 별로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지만, 몇 번의 문답 끝에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그리고 잊을만하면 그 시계 별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손목시계를 차고 거의 3년을 활동했다. 학교, 친구들 약속, 해커톤, 홀로 다닌 울산 여행, 처음 근무한 직장에서도 손목시계와 함께였다.

구매한 지 3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 시계 배터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기계 고치는 것에 재미를 들였던 터라, 직접 배터리를 교체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쿠팡에서 몇 가지 공구를 구매하고, 직접 하판을 뜯어 배터리를 교체하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가진 도구로는 시계의 하판을 열 수만 있고, 닫을 수는 없었다.... 하판을 닫는 도구는 15,000원이었고 사실 그 돈이면 그냥 시계방을 가는 게 나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불한 공구와 배터리값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도 될 것이었다. 가뜩이나 회사 다니느라 마음이 복잡한 시기였기에 해결을 미룬 채 시계 부품 통째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고쳐주고야 말겠다는 심정이었다.

버리기에는 아쉬운

어제 방을 청소하던 도중 하판이 열린 채로, 배터리가 제대로 작동하는건지도 의문인 시계를 다시 발견하였다. 거의 2년만이었다.

이참에 마음먹고 고칠까, 아니면 이제는 보내줘야하나.

괜히 심란해졌다. 소중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만, 이대로 두어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반드시 시계방에 가서 고쳐야만 쓸모가 생긴다. 하지만 워낙 저렴한 시계였기에 고치는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는게 나을 터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스마트 밴드를 사서 잘 쓰고 있다. 즉, 시계를 고치더라도 이전처럼 차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

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쓰레기 봉투에 시계를 집어넣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해결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었다. 시계를 고쳐야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순간 또다른 마음이 피어났다. 아쉬웠다. 시계를 처음 고르며 느꼈던 자유로움과 차고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이 생각났다. 시계를 버리면 추억도 같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죄책감이 들었다. 열심히 고쳐주겠다고 노력했는데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

결국 쓰레기봉투를 열고 시계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다.

학자가 되겠다는 꿈

사실 나에겐 이 손목시계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내 꿈이다.

나는 오랜 시간 학자가 되기를 꿈꿔왔다.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다니고, 박사 학위 받고,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것.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특정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모습도 상상하곤 했다. 수학자가 되겠다고 처음 말했던 때가 2013년 즈음이었으니,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그 꿈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정말 우연한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수학책이 너무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다른 수학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초등학교 도서관에 꽂힌 수학책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5살 남자아이가 공룡을 외우듯 수학자의 이름과 업적, 그들의 삶을 외우기 시작했다. 2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라하면 멋있게 수염을 기른 학자를 떠올리곤 했다. 내 삶에서 온전히 내 자유의지로 처음 만든 목표였다.

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단순한 로망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껏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삶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수학자를 꿈꾸며 시작한 공부는 물리로, 또 전산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IT 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학으로 현실 문제를 표현하고 해결해보겠다는 포부는 산업공학을 배우며 실현중이다. 과학기술원은 아니지만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도서관도 꾸준히 다니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순조롭게 꿈을 이뤄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제 대학원 컨택을 하고, 이전처럼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면 될테니까. 하지만, 막상 대학원 진학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문턱에서,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더이상 학자가 매력적인 진로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려 한다.

멈춰버린 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했던 것처럼, 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욕심을 충전해주면 어떨까. 갖은 노력을 해보아도 여의치 않았다. 혹시나 어떤 심리적인 방어 기제는 아닐까 고민해보았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환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고심하여도 결론은 같았다.

껍데기만 남아버린

갑작스럽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자세한 까닭은 다른 글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간략히 말하자면 내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학자보다 나은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궁극적인 이상향은 그대로이지만 수단이 바뀐 것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진로를 바꾸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렵게 결정한 만큼 확고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를 13년 이상 이끌던 로망들 – 과학기술원, 대학원, 박사 학위, 자유로운 캠퍼스, 해외 대학 및 연구소 – 을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삶의 모습을 꿈꾸면서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과거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어릴적부터 누적된 노력을 잘못된 판단으로 어그러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과, 스스로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더욱 아쉬운 상황은, 그런 로망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한 친구, 대학원에서 인턴을 하는 친구,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질투도 나고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다못해 최근 대학원 진학자가 증가한다는 통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든다. '나도 정말 원하던 건데', '나도 할 수 있는데'라고 혼잣말도 한다. 여태껏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꽤 자주, 남들이 부럽다.

이제 나는 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학자의 꿈은 자기 소임을 다했다. 학자가 되겠다며 노력한 흔적은 내 삶과 태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지 외형적인 껍데기가 미련을 남길 뿐이다. 마치 하판이 열린 시계처럼 말이다. 이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 나는 이 로망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고장난 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서랍에 넣어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