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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불완전하고 희소한 이야기</title>
    <link>https://blog.jongheon.cc/</link>
    <description>솔직하고, 자유롭고, 책임감 있는 글쓰기</description>
    <pubDate>Fri, 06 Nov 2026 05:49:21 +0000</pubDate>
    <item>
      <title>기술적 표준의 중요성 (짧은글)</title>
      <link>https://blog.jongheon.cc/gisuljeog-pyojunyi-jungyoseong-jjalbeungeul</link>
      <description>&lt;![CDATA[작성: 2026년 8월 17일&#xA;!--more--&#xA;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xA;&#xA;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을 해서 내리려는 찰나, 한 여성분이 다급히 나를 불러 물었다.&#xA;&#xA;&#34;혹시 보조배터리 가지고 계신가요? 제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34;&#xA;&#xA;상당히 난처한 눈치였다. 들어보니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떨어졌기 때문에,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xA;&#xA;마침 보조배터리가 배낭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꺼내 빌려드렸다. 나름대로 선행을 베푼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했다. 미사용 자원의 활용이라는 관점에서도 꽤 효율적인 상황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xA;&#xA;&#34;엇 혹시 이거 C타입인가요? 저는 아이폰 쓰는데.&#34;&#xA;&#xA;그렇다. 그 분의 휴대전화는 라이트닝 단자가 탑재된 아이폰으로, C타입 충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C타입 USB로 모든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그 분은 배터리를 눈앞에 두고도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없었다. (팀 쿡 만세!)&#xA;&#xA;그곳이 서울시 지하철이어서 망정이지, 만일 무인도에 표류하던 도중에 저런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xA;&#xA;그야말로 표준적인 기술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끝.&#xA;&#xA;p.s. 블로그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진지해지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짧고 장난스러운 글도 많이 쓸 생각입니다.]]&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작성: 2026년 8월 17일

며칠 전 있었던 일이다.</p>

<p>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을 해서 내리려는 찰나, 한 여성분이 다급히 나를 불러 물었다.</p>

<p>“혹시 보조배터리 가지고 계신가요? 제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서...”</p>

<p>상당히 난처한 눈치였다. 들어보니 휴대전화 배터리가 다 떨어졌기 때문에, 교통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p>

<p>마침 보조배터리가 배낭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흔쾌히 꺼내 빌려드렸다. 나름대로 선행을 베푼다는 사실이 기쁘고 뿌듯했다. 미사용 자원의 활용이라는 관점에서도 꽤 효율적인 상황이라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p>

<p>“엇 혹시 이거 C타입인가요? 저는 아이폰 쓰는데.”</p>

<p>그렇다. 그 분의 휴대전화는 라이트닝 단자가 탑재된 아이폰으로, C타입 충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C타입 USB로 모든 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나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결국 그 분은 배터리를 눈앞에 두고도 휴대전화를 충전할 수 없었다. (팀 쿡 만세!)</p>

<p>그곳이 서울시 지하철이어서 망정이지, 만일 무인도에 표류하던 도중에 저런 일이 발생했다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p>

<p>그야말로 표준적인 기술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는 경험이었다. 끝.</p>

<p>p.s. 블로그가 의도한 것 이상으로 진지해지는 것 같아서, 앞으로는 짧고 장난스러운 글도 많이 쓸 생각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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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s://blog.jongheon.cc/gisuljeog-pyojunyi-jungyoseong-jjalbeungeul</guid>
      <pubDate>Sun, 16 Aug 2026 16:06:09 +0000</pubDate>
    </item>
    <item>
      <title>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title>
      <link>https://blog.jongheon.cc/dojeohi-beoril-su-eobsneun-geos</link>
      <description>&lt;![CDATA[작성: 2026년 7월 22일&#xA;!--more--&#xA;시계 이야기&#xA;2022년 초, 내가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대학교 입학 선물이라며 손목시계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여러 제품을 찾아서 보내주셨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시계가 없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시계를 알아보기로 했다. &#xA;&#xA;시계를 고르면서 내 취향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시계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브랜드가 중요한가? 메탈이랑 가죽 중엔 뭐가 좋을까? 원래라면 그냥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을 그대로 썼을텐데(컴퓨터 제외), 내가 직접, 내 선호를 반영하여 비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처음 행사한 자유의 경험이었다.&#xA;&#xA;내가 고른 시계는 어머니가 주신 선택지와는 많이 달랐다. 가격대도 훨씬 저렴했고, 무엇보다도 꽤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었다. 어머니는 짐짓 별로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지만, 몇 번의 문답 끝에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그리고 잊을만하면 그 시계 별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손목시계를 차고 거의 3년을 활동했다. 학교, 친구들 약속, 해커톤, 홀로 다닌 울산 여행, 처음 근무한 직장에서도 손목시계와 함께였다.&#xA;&#xA;구매한 지 3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 시계 배터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기계 고치는 것에 재미를 들였던 터라, 직접 배터리를 교체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쿠팡에서 몇 가지 공구를 구매하고, 직접 하판을 뜯어 배터리를 교체하였다.&#xA;&#xA;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가진 도구로는 시계의 하판을 열 수만 있고, 닫을 수는 없었다.... 하판을 닫는 도구는 15,000원이었고 사실 그 돈이면 그냥 시계방을 가는 게 나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불한 공구와 배터리값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도 될 것이었다. 가뜩이나 회사 다니느라 마음이 복잡한 시기였기에 해결을 미룬 채 시계 부품 통째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고쳐주고야 말겠다는 심정이었다.&#xA;&#xA;버리기에는 아쉬운&#xA;어제 방을 청소하던 도중 하판이 열린 채로, 배터리가 제대로 작동하는건지도 의문인 시계를 다시 발견하였다. 거의 2년만이었다.&#xA;&#xA;이참에 마음먹고 고칠까, 아니면 이제는 보내줘야하나.&#xA;&#xA;괜히 심란해졌다. 소중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만, 이대로 두어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반드시 시계방에 가서 고쳐야만 쓸모가 생긴다. 하지만 워낙 저렴한 시계였기에 고치는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는게 나을 터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스마트 밴드를 사서 잘 쓰고 있다. 즉, 시계를 고치더라도 이전처럼 차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xA;&#xA;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쓰레기 봉투에 시계를 집어넣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해결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었다. 시계를 고쳐야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xA;&#xA;하지만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순간 또다른 마음이 피어났다. 아쉬웠다. 시계를 처음 고르며 느꼈던 자유로움과 차고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이 생각났다. 시계를 버리면 추억도 같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죄책감이 들었다. 열심히 고쳐주겠다고 노력했는데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xA;&#xA;결국 쓰레기봉투를 열고 시계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다.&#xA;&#xA;학자가 되겠다는 꿈&#xA;사실 나에겐 이 손목시계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내 꿈이다.&#xA;&#xA;나는 오랜 시간 학자가 되기를 꿈꿔왔다.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다니고, 박사 학위 받고,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것.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특정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모습도 상상하곤 했다. 수학자가 되겠다고 처음 말했던 때가 2013년 즈음이었으니,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그 꿈으로 살아왔던 것이다.&#xA;&#xA;정말 우연한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수학책이 너무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다른 수학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초등학교 도서관에 꽂힌 수학책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5살 남자아이가 공룡을 외우듯 수학자의 이름과 업적, 그들의 삶을 외우기 시작했다. 2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라하면 멋있게 수염을 기른 학자를 떠올리곤 했다. 내 삶에서 온전히 내 자유의지로 처음 만든 목표였다.&#xA;&#xA;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단순한 로망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껏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삶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수학자를 꿈꾸며 시작한 공부는 물리로, 또 전산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IT 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학으로 현실 문제를 표현하고 해결해보겠다는 포부는 산업공학을 배우며 실현중이다. 과학기술원은 아니지만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도서관도 꾸준히 다니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xA;&#xA;어떤 면에서는 순조롭게 꿈을 이뤄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제 대학원 컨택을 하고, 이전처럼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면 될테니까. 하지만, 막상 대학원 진학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문턱에서,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더이상 학자가 매력적인 진로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려 한다. &#xA;&#xA;멈춰버린 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했던 것처럼, 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욕심을 충전해주면 어떨까. 갖은 노력을 해보아도 여의치 않았다. 혹시나 어떤 심리적인 방어 기제는 아닐까 고민해보았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환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고심하여도 결론은 같았다.&#xA;&#xA;껍데기만 남아버린&#xA;갑작스럽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자세한 까닭은 다른 글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간략히 말하자면 내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학자보다 나은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궁극적인 이상향은 그대로이지만 수단이 바뀐 것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진로를 바꾸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렵게 결정한 만큼 확고하기도 하다.&#xA;&#xA;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를 13년 이상 이끌던 로망들 - 과학기술원, 대학원, 박사 학위, 자유로운 캠퍼스, 해외 대학 및 연구소 - 을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삶의 모습을 꿈꾸면서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과거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어릴적부터 누적된 노력을 잘못된 판단으로 어그러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과, 스스로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xA;&#xA;더욱 아쉬운 상황은, 그런 로망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한 친구, 대학원에서 인턴을 하는 친구,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질투도 나고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다못해 최근 대학원 진학자가 증가한다는 통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든다. &#39;나도 정말 원하던 건데&#39;, &#39;나도 할 수 있는데&#39;라고 혼잣말도 한다. 여태껏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꽤 자주, 남들이 부럽다.&#xA;&#xA;이제 나는 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학자의 꿈은 자기 소임을 다했다. 학자가 되겠다며 노력한 흔적은 내 삶과 태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지 외형적인 껍데기가 미련을 남길 뿐이다. 마치 하판이 열린 시계처럼 말이다. 이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 나는 이 로망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고장난 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서랍에 넣어둘 것인가.]]&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작성: 2026년 7월 22일
</p>

<h3 id="시계-이야기">시계 이야기</h3>

<p>2022년 초, 내가 대학교 입학을 준비하던 때였다. 어느날 어머니는 대학교 입학 선물이라며 손목시계를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여러 제품을 찾아서 보내주셨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시계가 없었다. 그래서 양해를 구하고 며칠 동안 인터넷에서 시계를 알아보기로 했다.</p>

<p>시계를 고르면서 내 취향을 고민해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시계를 멋있다고 생각하지? 브랜드가 중요한가? 메탈이랑 가죽 중엔 뭐가 좋을까? 원래라면 그냥 어머니가 골라주신 것을 그대로 썼을텐데(컴퓨터 제외), 내가 직접, 내 선호를 반영하여 비교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어엿한 성인이 되어 처음 행사한 자유의 경험이었다.</p>

<p>내가 고른 시계는 어머니가 주신 선택지와는 많이 달랐다. 가격대도 훨씬 저렴했고, 무엇보다도 꽤나 개성 넘치는 디자인이었다. 어머니는 짐짓 별로라고 생각하신 것 같았지만, 몇 번의 문답 끝에 내 결정을 존중해주셨다(그리고 잊을만하면 그 시계 별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손목시계를 차고 거의 3년을 활동했다. 학교, 친구들 약속, 해커톤, 홀로 다닌 울산 여행, 처음 근무한 직장에서도 손목시계와 함께였다.</p>

<p>구매한 지 3년이 조금 지나서였을까, 시계 배터리가 떨어지고 말았다. 당시 나는 기계 고치는 것에 재미를 들였던 터라, 직접 배터리를 교체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쿠팡에서 몇 가지 공구를 구매하고, 직접 하판을 뜯어 배터리를 교체하였다.</p>

<p>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내가 가진 도구로는 시계의 하판을 열 수만 있고, 닫을 수는 없었다.... 하판을 닫는 도구는 15,000원이었고 사실 그 돈이면 그냥 시계방을 가는 게 나았다. 게다가 지금까지 지불한 공구와 배터리값까지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도 될 것이었다. 가뜩이나 회사 다니느라 마음이 복잡한 시기였기에 해결을 미룬 채 시계 부품 통째로 서랍에 넣어두었다. 언젠가는 고쳐주고야 말겠다는 심정이었다.</p>

<h3 id="버리기에는-아쉬운">버리기에는 아쉬운</h3>

<p>어제 방을 청소하던 도중 하판이 열린 채로, 배터리가 제대로 작동하는건지도 의문인 시계를 다시 발견하였다. 거의 2년만이었다.</p>

<p>이참에 마음먹고 고칠까, 아니면 이제는 보내줘야하나.</p>

<p>괜히 심란해졌다. 소중하고 추억이 담긴 물건이지만, 이대로 두어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반드시 시계방에 가서 고쳐야만 쓸모가 생긴다. 하지만 워낙 저렴한 시계였기에 고치는 비용을 고려하면 차라리 새 시계를 사는게 나을 터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스마트 밴드를 사서 잘 쓰고 있다. 즉, 시계를 고치더라도 이전처럼 차고 다니지는 않을 것 같다.</p>

<p>복잡한 마음을 다잡으며, 쓰레기 봉투에 시계를 집어넣었다. 마음이 홀가분했다. 해결하지 못한 오래된 숙제를 끝마친 기분이었다. 시계를 고쳐야한다는 의무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p>

<p>하지만 책상에 앉아 책을 펴는 순간 또다른 마음이 피어났다. 아쉬웠다. 시계를 처음 고르며 느꼈던 자유로움과 차고 다니면서 경험한 일들이 생각났다. 시계를 버리면 추억도 같이 사라질 것 같았다. 그 다음은 죄책감이 들었다. 열심히 고쳐주겠다고 노력했는데 믿음을 저버리게 되는 것 같아 미안했다.</p>

<p>결국 쓰레기봉투를 열고 시계를 꺼내왔다. 그리고는 다시 서랍에 넣어두었다.</p>

<h3 id="학자가-되겠다는-꿈">학자가 되겠다는 꿈</h3>

<p>사실 나에겐 이 손목시계와 비슷한 존재가 또 있다. 바로 내 꿈이다.</p>

<p>나는 오랜 시간 학자가 되기를 꿈꿔왔다.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하고, 대학원 다니고, 박사 학위 받고, 도서관과 강의실을 오가며 연구에 매진하는 삶을 사는 것. 해외 대학에서 공부하거나 특정한 연구소에서 일하는 모습도 상상하곤 했다. 수학자가 되겠다고 처음 말했던 때가 2013년 즈음이었으니, 내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그 꿈으로 살아왔던 것이다.</p>

<p>정말 우연한 시작이었다.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접한 수학책이 너무 흥미로웠고, 자연스럽게 다른 수학책도 찾아보게 되었다. 1년이 지나자 초등학교 도서관에 꽂힌 수학책은 전부 읽을 수 있었다. 5살 남자아이가 공룡을 외우듯 수학자의 이름과 업적, 그들의 삶을 외우기 시작했다. 20년 뒤의 미래를 그려보라하면 멋있게 수염을 기른 학자를 떠올리곤 했다. 내 삶에서 온전히 내 자유의지로 처음 만든 목표였다.</p>

<p>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단순한 로망에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껏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고, 삶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수학자를 꿈꾸며 시작한 공부는 물리로, 또 전산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IT 산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학으로 현실 문제를 표현하고 해결해보겠다는 포부는 산업공학을 배우며 실현중이다. 과학기술원은 아니지만 훌륭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고, 도서관도 꾸준히 다니면서 배움을 멈추지 않는다.</p>

<p>어떤 면에서는 순조롭게 꿈을 이뤄가고 있는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이제 대학원 컨택을 하고, 이전처럼 열심히 공부를 계속하면 될테니까. 하지만, 막상 대학원 진학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문턱에서, 내 마음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더이상 학자가 매력적인 진로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정해진 것은 없지만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으려 한다.</p>

<p>멈춰버린 시계의 배터리를 교체했던 것처럼, 학자가 되겠다는 열망이나 학문적 성취에 대한 욕심을 충전해주면 어떨까. 갖은 노력을 해보아도 여의치 않았다. 혹시나 어떤 심리적인 방어 기제는 아닐까 고민해보았다. 너무 급작스러운 전환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고심하여도 결론은 같았다.</p>

<h3 id="껍데기만-남아버린">껍데기만 남아버린</h3>

<p>갑작스럽게 다른 진로를 선택한 자세한 까닭은 다른 글에서 소개할 기회가 있을 것 같다. 간략히 말하자면 내 이상을 실현하는 데 학자보다 나은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궁극적인 이상향은 그대로이지만 수단이 바뀐 것이다. 오랜 시간 준비한 진로를 바꾸는 건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어렵게 결정한 만큼 확고하기도 하다.</p>

<p>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나를 13년 이상 이끌던 로망들 – 과학기술원, 대학원, 박사 학위, 자유로운 캠퍼스, 해외 대학 및 연구소 – 을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리자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런 삶의 모습을 꿈꾸면서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학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온 과거의 자신에게도 미안하다. 어릴적부터 누적된 노력을 잘못된 판단으로 어그러뜨리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과, 스스로를 실망시켰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p>

<p>더욱 아쉬운 상황은, 그런 로망을 실현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보인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원에 진학한 친구, 대학원에서 인턴을 하는 친구, 교환학생을 가는 친구들을 보면 괜스레 질투도 나고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하다못해 최근 대학원 진학자가 증가한다는 통계를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든다. &#39;나도 정말 원하던 건데&#39;, &#39;나도 할 수 있는데&#39;라고 혼잣말도 한다. 여태껏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꽤 자주, 남들이 부럽다.</p>

<p>이제 나는 학자를 꿈꾸지 않는다. 학자의 꿈은 자기 소임을 다했다. 학자가 되겠다며 노력한 흔적은 내 삶과 태도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단지 외형적인 껍데기가 미련을 남길 뿐이다. 마치 하판이 열린 시계처럼 말이다. 이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므로, 자체로는 아무런 기능이 없다. 나는 이 로망을 버릴 수 있을까. 아니면 고장난 시계와 마찬가지로 그저 서랍에 넣어둘 것인가.</p>
]]></content:encoded>
      <guid>https://blog.jongheon.cc/dojeohi-beoril-su-eobsneun-geos</guid>
      <pubDate>Wed, 29 Jul 2026 13:25:12 +0000</pubDate>
    </item>
    <item>
      <title>졌지만, 잘 싸웠다</title>
      <link>https://blog.jongheon.cc/jyeossjiman-jal-ssaweossda</link>
      <description>&lt;![CDATA[작성: 2026년 7월 13일&#xA;!--more--&#xA;&#xA;졌지만, 잘 싸웠다&#xA;2023년 K리그1 7라운드 울산과 대전의 경기가 떠오른다. 당시 울산은 개막 7연승을 노리던 파죽지세의, &#39;아무도 막을 수 없는&#39; 팀이었다. 이전 시즌 우승팀의 자부심, 6경기 13득점 4실점의 경기력, 웃음기 가득한 팬들, 기세등등한 선수들까지 여러모로 최강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언론은 7라운드 시작 전부터 리그 사상 첫 개막 8연승 기록에 주목하였다. 그러니까 대전은 당연히 이기고(7연승), 8연승 기록도 꿈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팬들 역시 8라운드 동해안더비에서 포항을 잡고 8연승 기록을 볼 수 있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앞으로 지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xA;&#xA;읽으면서 눈치챘겠지만, 그해 울산의 연승 기록은 6까지였다. 7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경기 초반 실점을 당하였고, 직후 투입된 김민혁이 활약하며 동점을 만들었지만, 전반전 막판 추가 실점을 하고 말았다. 후반전에 분전하였지만 그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며 결과는 2대1 패배로 끝났다. TV를 끄고서도 일주일 내내 골 찬스가 머릿속을 헤집을 정도로 아쉬웠다.&#xA;&#xA;개인적으로 이 경기를 울산의 최고 경기라고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고 본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고 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팬들은 경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선수들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도 역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xA;&#xA;흔히 스포츠에서 진 팀을 격려하기 위해 &#39;졌지만, 잘 싸웠다&#39;고 말한다. 비록 패배하였으나, 경기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대들은 열심히 경기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낙담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울산은 졌지만, 잘 싸웠다. 승리했던 지난 6경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기에, 다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xA;&#xA;잘 싸우면 이겼을까?&#xA;비관하는 측에서는, &#39;잘 싸웠으면 이겼겠지&#39;라고 비판하며, &#39;졌잘싸&#39;는 그저 패배자의 정신승리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 상대방에 맞춰서 다른 라인업을 꺼내야 했다거나, 부진한 특정 선수를 진작에 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경기 시작 전에 상대의 전술을 알 수는 없다. 특정 선수가 부진할지 미리 알 수도 없다. 적어도 경기 직전까지, 혹은 경기 내부적으로도 좋은 판단을 내렸지만 결국은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 &#xA;&#xA;&#39;잘 싸웠다&#39;는 것이 반드시 &#39;이긴다&#39;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더 일반화된 표현으로는, &#39;좋은 의사결정&#39;이 &#39;좋은 결과&#39;로 이어지지는 않는다.&#xA;&#xA;가시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1천원짜리 로또의 기대가치가 500원 언저리라는 것을 안다(몰랐다면 알아두자). 그러므로 로또를 구매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한 장 구매할 때마다 500원씩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주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어서 수억 원의 당첨금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들이 당첨되었다고 해서, 로또 구매가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말 희박한 확률로 당첨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복권을 사서는 곤란하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 다음에도 당첨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xA;&#xA;반대로 생각해보자. 누군가 번호를 찍어주면서 로또를 한 장 사볼 것을 권했는데, 나는 사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번호가 당첨번호였다면 이는 분명 나쁜 결과다. 구매했다면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돌아온 결과는 0원이기 때문이다. &#39;속는 셈치고 사볼 걸&#39;이라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또 구매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1천원짜리 로또 한 장을 구매하면 실질적으로는 500원을 잃는 효과가 생긴다. 합리적으로 판단했음에도 나쁜 결과를 얻는 순간이다.&#xA;&#xA;도대체 왜, 좋은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의사결정을 잘했더라면 성과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xA;&#xA;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어서다. 만약 내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이번 주 로또 당첨 번호를 알아낸다면, 당연히 복권을 구매할 것이다. 한 장 아니고 여러 장 살 것이다. 왜냐하면 당첨 번호를 아는 이상, 로또 한 장의 기대가치는 500원이 아니라 수억 원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당첨 번호라는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39;로또 구매&#39;라는 행동은 &#39;좋은 의사결정&#39;이 되고 늘 &#39;좋은 결과&#39;를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첨 번호를 절대 알 수 없다.&#xA;&#xA;우리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려 노력한다. 오늘 상대의 전술도, 특출나거나 부진한 선수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최선의 라인업을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별개로 좋은 의사결정을 내렸었다면 과정은 &#39;잘 싸웠다&#39;며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xA;&#xA;좋은 과정을 지향하기&#xA;나는 울산의 7R 패배를 보고 &#39;졌잘싸&#39;라고 말하며, 관용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최근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해진 것 같다. &#xA;&#xA;나쁜 결과를 얻으면 이전의 의사결정을 복기하면서 &#39;무엇이 잘못되었을까&#39;, &#39;무엇을 달리했어야 하나&#39; 고민하곤 한다. 잘못된 점을 찾으면 다행이다. 그걸 고치고, 다음부터는 잘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원인을 모를 수도 있다. 당시에 알 수 있는 정보만 고려하면 합리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돌아가도 이전과 똑같이 결정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때는 &#39;운이 나빴다&#39;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xA;&#xA;요즈음 태도를 보면 나의 목표가 너무 과한 느낌이다. 최대한 데이터를 끌어모아 &#39;완벽한&#39; 정보를 얻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모든 경기를 이기고, 최고의 결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는 이론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자료조사를 한들 로또 당첨번호를 알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39;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었어&#39;, &#39;나는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39;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들리지만, 자신감이 나를 괴롭혀서는 안된다.&#xA;&#xA;과정과 결과 중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과정이라고 답한다. 이유는 지속 가능성이다. 나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좋은 결과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나쁨에도 좋은 과정을 보였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xA;&#xA;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할 수 있고, 최고의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결과론적인 리뷰는 고통스러울 뿐 더 좋은 의사결정으로 이끌지 않는다.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라면, &#39;졌지만, 잘 싸웠다&#39;며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좋은 과정을 지향해야만이 진정한 좋은 결과도 기약할 수 있다.]]&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작성: 2026년 7월 13일
</p>

<h3 id="졌지만-잘-싸웠다">졌지만, 잘 싸웠다</h3>

<p>2023년 K리그1 7라운드 울산과 대전의 경기가 떠오른다. 당시 울산은 개막 7연승을 노리던 파죽지세의, &#39;아무도 막을 수 없는&#39; 팀이었다. 이전 시즌 우승팀의 자부심, 6경기 13득점 4실점의 경기력, 웃음기 가득한 팬들, 기세등등한 선수들까지 여러모로 최강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언론은 7라운드 시작 전부터 리그 사상 첫 개막 8연승 기록에 주목하였다. 그러니까 대전은 당연히 이기고(7연승), 8연승 기록도 꿈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팬들 역시 8라운드 동해안더비에서 포항을 잡고 8연승 기록을 볼 수 있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앞으로 지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p>

<p>읽으면서 눈치챘겠지만, 그해 울산의 연승 기록은 6까지였다. 7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경기 초반 실점을 당하였고, 직후 투입된 김민혁이 활약하며 동점을 만들었지만, 전반전 막판 추가 실점을 하고 말았다. 후반전에 분전하였지만 그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며 결과는 2대1 패배로 끝났다. TV를 끄고서도 일주일 내내 골 찬스가 머릿속을 헤집을 정도로 아쉬웠다.</p>

<p>개인적으로 이 경기를 울산의 최고 경기라고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고 본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고 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팬들은 경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선수들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도 역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p>

<p>흔히 스포츠에서 진 팀을 격려하기 위해 &#39;졌지만, 잘 싸웠다&#39;고 말한다. 비록 패배하였으나, 경기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대들은 열심히 경기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낙담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울산은 졌지만, 잘 싸웠다. 승리했던 지난 6경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기에, 다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p>

<h3 id="잘-싸우면-이겼을까">잘 싸우면 이겼을까?</h3>

<p>비관하는 측에서는, &#39;잘 싸웠으면 이겼겠지&#39;라고 비판하며, &#39;졌잘싸&#39;는 그저 패배자의 정신승리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 상대방에 맞춰서 다른 라인업을 꺼내야 했다거나, 부진한 특정 선수를 진작에 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경기 시작 전에 상대의 전술을 알 수는 없다. 특정 선수가 부진할지 미리 알 수도 없다. 적어도 경기 직전까지, 혹은 경기 내부적으로도 좋은 판단을 내렸지만 결국은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p>

<p>&#39;잘 싸웠다&#39;는 것이 반드시 &#39;이긴다&#39;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더 일반화된 표현으로는, &#39;좋은 의사결정&#39;이 &#39;좋은 결과&#39;로 이어지지는 않는다.</p>

<p>가시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1천원짜리 로또의 기대가치가 500원 언저리라는 것을 안다(몰랐다면 알아두자). 그러므로 로또를 구매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한 장 구매할 때마다 500원씩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주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어서 수억 원의 당첨금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들이 당첨되었다고 해서, 로또 구매가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말 희박한 확률로 당첨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복권을 사서는 곤란하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 다음에도 당첨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p>

<p>반대로 생각해보자. 누군가 번호를 찍어주면서 로또를 한 장 사볼 것을 권했는데, 나는 사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번호가 당첨번호였다면 이는 분명 나쁜 결과다. 구매했다면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돌아온 결과는 0원이기 때문이다. &#39;속는 셈치고 사볼 걸&#39;이라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또 구매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1천원짜리 로또 한 장을 구매하면 실질적으로는 500원을 잃는 효과가 생긴다. 합리적으로 판단했음에도 나쁜 결과를 얻는 순간이다.</p>

<p>도대체 왜, 좋은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의사결정을 잘했더라면 성과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p>

<p>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어서다. 만약 내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이번 주 로또 당첨 번호를 알아낸다면, 당연히 복권을 구매할 것이다. 한 장 아니고 여러 장 살 것이다. 왜냐하면 당첨 번호를 아는 이상, 로또 한 장의 기대가치는 500원이 아니라 수억 원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당첨 번호라는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39;로또 구매&#39;라는 행동은 &#39;좋은 의사결정&#39;이 되고 늘 &#39;좋은 결과&#39;를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첨 번호를 절대 알 수 없다.</p>

<p>우리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려 노력한다. 오늘 상대의 전술도, 특출나거나 부진한 선수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최선의 라인업을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별개로 좋은 의사결정을 내렸었다면 과정은 &#39;잘 싸웠다&#39;며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p>

<h3 id="좋은-과정을-지향하기">좋은 과정을 지향하기</h3>

<p>나는 울산의 7R 패배를 보고 &#39;졌잘싸&#39;라고 말하며, 관용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최근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해진 것 같다.</p>

<p>나쁜 결과를 얻으면 이전의 의사결정을 복기하면서 &#39;무엇이 잘못되었을까&#39;, &#39;무엇을 달리했어야 하나&#39; 고민하곤 한다. 잘못된 점을 찾으면 다행이다. 그걸 고치고, 다음부터는 잘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원인을 모를 수도 있다. 당시에 알 수 있는 정보만 고려하면 합리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돌아가도 이전과 똑같이 결정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때는 &#39;운이 나빴다&#39;라고 인정해야만 한다.</p>

<p>요즈음 태도를 보면 나의 목표가 너무 과한 느낌이다. 최대한 데이터를 끌어모아 &#39;완벽한&#39; 정보를 얻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모든 경기를 이기고, 최고의 결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는 이론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자료조사를 한들 로또 당첨번호를 알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39;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었어&#39;, &#39;나는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39;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들리지만, 자신감이 나를 괴롭혀서는 안된다.</p>

<p>과정과 결과 중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과정이라고 답한다. 이유는 지속 가능성이다. <strong>나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좋은 결과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나쁨에도 좋은 과정을 보였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strong></p>

<p>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할 수 있고, 최고의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결과론적인 리뷰는 고통스러울 뿐 더 좋은 의사결정으로 이끌지 않는다.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라면, &#39;졌지만, 잘 싸웠다&#39;며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좋은 과정을 지향해야만이 진정한 좋은 결과도 기약할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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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s://blog.jongheon.cc/jyeossjiman-jal-ssaweossda</guid>
      <pubDate>Mon, 13 Jul 2026 11:24:2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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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구글이 주도한 &#39;쌀먹&#39;의 세상: 지속 가능성은?</title>
      <link>https://blog.jongheon.cc/gugeuli-judohan-ssalmeogyi-sesang-jisog-ganeungseongeun</link>
      <description>&lt;![CDATA[작성: 2026년 6월 23일&#xA;!--more--&#xA;광고를 피하려면 돈을 지불하세요&#xA;오늘은 Youtube Premium 정기결제일이다. 나는 2024년 2월부터 Youtube Premium을 사용했다. 풀어쓰자면 매달 14,900원의 거금을 28개월째 지불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OTT나 AI 등 구독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하지 않지만 Youtube Premium은 계속 결제하고 있다.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xA;&#xA;나는 공부할 때나 작업할 때, 심지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Youtube에서 음악을 듣는다. 휴식 중에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매일 아침엔 카야 토스트를 먹으면서 뉴스를 시청한다. 이렇듯 Youtube는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기에 지저분한 광고는 일상의 몰입을 깨버린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푸는 와중에 30초짜리 광고를 스킵하려고 화면을 주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xA;&#xA;독자 여러분은 &#39;광고를 피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39;는 개념에 공감할 수 있을까. 아마 10년 전엔 대부분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6년에는 Youtube Premium 가입자가 1억 3천만을 넘어섰으므로, 공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xA;&#xA;애당초 광고는 소비자의 지출을 유도하는 도구다. 하지만 최근의 온라인 광고는 소비자를 불편케하고, 1억 3천만명의 사용자가 돈을 내서라도 피하고 싶은 존재다. 이는 구글이 설계한 온라인 생태계에 중대한 결함이 생겼다는 증거로 보인다.&#xA;&#xA;광고 조회수가 최고인 생태계&#xA;익숙한 이야기지만, Youtube 생태계를 한 번 더 짚어보자.&#xA;&#xA;소비자는 Youtube에서 유용한 컨텐츠를 무료로 이용한다. 그 대신 광고를 시청하고 (가끔은)제품을 구매한다. 광고주들은 자사 제품/서비스를 노출시키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지불한다. 크리에이터는 양질의 컨텐츠를 제작하여 광고 시청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조회수에 기반해 수익을 정산받는다. 플랫폼 운영자인 구글은 광고 수수료를 가져간다. 광고가 Google Ads와 Adsense를 거쳐 송출되는 경우 수수료율은 약 32%다.&#xA;&#xA;구글은 Youtube 뿐만 아니라, Play Store, 검색엔진에서도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한다. 이를 반영하듯, Alphabet(구글의 모회사) 매출 중 약 70%는 광고 중개로 발생하였다. 이같은 BM은 Google과 소비자, 광고주, 크리에이터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생태계로 보인다.&#xA;&#xA;하지만 온라인 광고 시스템에는 조회수라는 큰 허점이 존재한다. 크리에이터(또는 앱개발자, 웹페이지 운영자)의 입장에서 수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지표는 조회수이지, 컨텐츠의 품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컨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해당 컨텐츠가 제공하는 재미나 정보가 아니라 조회수다. &#xA;&#xA;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이나 썸네일을 고르는 것은 예삿일이다. 단순히 구글 알고리즘에 &#39;간택&#39;되기 위한 방법론(SEO, ASO 등)은 마케팅 전략으로 포장되어 비생산적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컨텐츠 스패밍, 봇 트래픽처럼 아예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는 기술도 등장했다. 그 결과 Youtube, Play Store, 웹페이지 등 모든 플랫폼에서 저품질 컨텐츠 시장이 자라났다. 이른바 &#39;쌀먹&#39;의 시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xA;&#xA;광고를 광고하다&#xA;컨텐츠를 만든 다음엔 광고를 볼 사람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온라인 광고에서 사용자의 규모와 체류 시간을 확장하려는 방법이 여럿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쓰이는 해결책 또한 광고다. 우선 광고로 사용자를 모으고, 모은 사용자에게 광고를 보여줘서 수익을 창출한다. 광고를 볼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광고를 집행하는 셈이다. 조회수를 노리는 사업자가 스스로 광고주를 겸하면서, 컨텐츠의 저품질화가 광고의 저품질화로 전이한 것이다.&#xA;&#xA;극단적인 예시로 양산형 모바일 퍼즐게임을 살펴보자. 이 앱들은 일반 퍼즐 게임과 달리 난이도를 비합리적으로 높인다. 풀이에 실패하거나 아이템을 쓰려면 광고를 시청해야 하는데, 그 광고로 유사한 퍼즐게임을 홍보한다. 겉보기엔 똑같이 생긴 퍼즐이지만 교묘하게 이름만 바꿔서 출시하는 케이스도 있다. 이렇게 설치된 게임은 앱 스토어 상단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래는 재미로 경쟁해야 할 게임들이 단순히 광고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다.&#xA;&#xA;양산형 퍼즐게임들은 극단적인 예시일 뿐, 광고로 수익을 내는 수많은 기업들 또한 유사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렇게 &#39;광고용 광고&#39;는 본질적인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 사용자의 피로도를 더욱 높인다. 우리가 온라인 광고를 보면서 &#39;흥미롭다. 구매하고 싶다&#39;라는 욕구보다 &#39;빨리 넘겨버리고 싶다&#39;는 충동이 드는 이유는 &#39;광고용 광고&#39;에 어느샌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xA;&#xA;안타깝게도 구글은 저품질 광고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Youtube Premium을 출시하며 저품질 광고를 넘기고 싶은 사용자를 오히려 수익화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가입하지 않은 일반 사용자는 더 많은 저품질 광고에 노출되었다. 소비자들은 플랫폼 사용을 불편해하고, &#39;광고를 위한 광고&#39; 시장에 참여한 기업들은 극심한 마케팅 출혈경쟁에 빠졌다. 이제 구글은 양쪽 모두에게서 수익을 창출한다.&#xA;&#xA;Gemini가 &#39;쌀먹&#39;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xA;&#xA;&#39;쌀먹&#39;이라는 용어는 본래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게임을 하면서 얻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데, 실질적인 효용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저품질 컨텐츠/광고 현상과 유사하다. &#xA;&#xA;&#39;쌀먹&#39;의 관점에서, Gemini는 매우 전략적인 아이템이다. Gemini의 발전으로 구글의 광고 시스템에 붙은 &#39;쌀먹&#39; 컨텐츠 개발자들은 더욱 기세등등할 것이다. 과거에는 클릭 유도용 블로그, 자극적인 썸네일, 양산형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Gemini와 같은 생성형 AI는 이마저도 자동화할 수 있다.&#xA;&#xA;이를 방증하듯 AI를 활용한 Youtube, 블로그 수익 창출에 관한 강의가 범람하고 있다. 이들 강의는 생성형 AI를 사용해 큰 노력없이도 쏠쏠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자동화한 컨텐츠 공장이 지속 가능한 불로소득을 창출할 것이라 주장한다. &#xA;&#xA;주장의 신빙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상위 검색 결과를 AI로 생성한 컨텐츠가 차지하는 일은 부지기수며, Youtube에도 AI로 생성한 영상이 늘어나고 있다. Play Store에선 &#39;개발자&#39;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앱 심사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컨텐츠를 제작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물의 품질이다. AI로 생성한 컨텐츠라도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준다면 괜찮다. 하지만 여러 설문조사가 이야기하듯 AI slop은 사용자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xA;&#xA;구글은 Gemini 토큰을 판매하며 소비자와 광고주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라는 플랫폼의 마지막 주체마저 수익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만약 구글이 이번에도 저품질의 컨텐츠를 필터링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승인하며 Gemini 토큰을 판매한다면 플랫폼의 신뢰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 &#xA;&#xA;결론: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xA;&#xA;개인적으로 인터넷 발전의 역사에서 온라인 광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광고 시스템은 정보의 접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으며, 유용한 정보 전달에 큰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Youtube Premium의 대성공을 보자면 온라인 광고 기반 생태계가 진정 지속 가능한지, 우리의 인터넷 생활이 갈수록 불편해졌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xA;&#xA;생성형 AI는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Youtube의 대체재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경쟁자가 등장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광고가 소비자에게 피로를 주는 상황에서 생성형 AI로 저품질 컨텐츠까지 양산된다면, 소비자가 구글 플랫폼을 이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xA;&#xA;아이러니하게도 조회수를 노리는 저품질 컨텐츠와 그것을 홍보하기 위한 저품질 광고,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소모되는 생성형 AI 토큰, 불편한 광고를 피하려는 소비자의 심리는 모두 구글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이는 재무적으로 이득이므로 주주들은 환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과 인터넷의 황폐화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xA;&#xA;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구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구글 뿐이다. 플랫폼에서 큐레이션 알고리즘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만족을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컨텐츠 평가 기준, 보상 구조, 수수료 산정 방식 등 중대한 의사결정들을 재검토해야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작성: 2026년 6월 23일
</p>

<h2 id="광고를-피하려면-돈을-지불하세요">광고를 피하려면 돈을 지불하세요</h2>

<p>오늘은 Youtube Premium 정기결제일이다. 나는 2024년 2월부터 Youtube Premium을 사용했다. 풀어쓰자면 매달 14,900원의 거금을 28개월째 지불한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으로 OTT나 AI 등 구독서비스를 꾸준히 이용하지 않지만 Youtube Premium은 계속 결제하고 있다. 그만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

<p>나는 공부할 때나 작업할 때, 심지어는 게임을 하는 동안에도 Youtube에서 음악을 듣는다. 휴식 중에는 재미있는 영상을 보고, 매일 아침엔 카야 토스트를 먹으면서 뉴스를 시청한다. 이렇듯 Youtube는 일상의 일부를 차지하기에 지저분한 광고는 일상의 몰입을 깨버린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를 푸는 와중에 30초짜리 광고를 스킵하려고 화면을 주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p>

<p>독자 여러분은 &#39;광고를 피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다&#39;는 개념에 공감할 수 있을까. 아마 10년 전엔 대부분 반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2026년에는 Youtube Premium 가입자가 1억 3천만을 넘어섰으므로, 공감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p>

<p>애당초 광고는 소비자의 지출을 유도하는 도구다. 하지만 최근의 온라인 광고는 소비자를 불편케하고, 1억 3천만명의 사용자가 돈을 내서라도 피하고 싶은 존재다. 이는 구글이 설계한 온라인 생태계에 중대한 결함이 생겼다는 증거로 보인다.</p>

<h2 id="광고-조회수가-최고인-생태계">광고 조회수가 최고인 생태계</h2>

<p>익숙한 이야기지만, Youtube 생태계를 한 번 더 짚어보자.</p>

<p>소비자는 Youtube에서 유용한 컨텐츠를 무료로 이용한다. 그 대신 광고를 시청하고 (가끔은)제품을 구매한다. 광고주들은 자사 제품/서비스를 노출시키기 위해 마케팅 비용을 지불한다. 크리에이터는 양질의 컨텐츠를 제작하여 광고 시청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조회수에 기반해 수익을 정산받는다. 플랫폼 운영자인 구글은 광고 수수료를 가져간다. 광고가 Google Ads와 Adsense를 거쳐 송출되는 경우 수수료율은 약 32%다.</p>

<p>구글은 Youtube 뿐만 아니라, Play Store, 검색엔진에서도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운영한다. 이를 반영하듯, Alphabet(구글의 모회사) 매출 중 약 70%는 광고 중개로 발생하였다. 이같은 BM은 Google과 소비자, 광고주, 크리에이터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생태계로 보인다.</p>

<p>하지만 온라인 광고 시스템에는 조회수라는 큰 허점이 존재한다. 크리에이터(또는 앱개발자, 웹페이지 운영자)의 입장에서 수익에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지표는 조회수이지, 컨텐츠의 품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입장에서 컨텐츠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는 해당 컨텐츠가 제공하는 재미나 정보가 아니라 조회수다.</p>

<p>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이나 썸네일을 고르는 것은 예삿일이다. 단순히 구글 알고리즘에 &#39;간택&#39;되기 위한 방법론(SEO, ASO 등)은 마케팅 전략으로 포장되어 비생산적 경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컨텐츠 스패밍, 봇 트래픽처럼 아예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는 기술도 등장했다. 그 결과 Youtube, Play Store, 웹페이지 등 모든 플랫폼에서 저품질 컨텐츠 시장이 자라났다. 이른바 &#39;쌀먹&#39;의 시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p>

<h2 id="광고를-광고하다">광고를 광고하다</h2>

<p>컨텐츠를 만든 다음엔 광고를 볼 사람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온라인 광고에서 사용자의 규모와 체류 시간을 확장하려는 방법이 여럿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주 쓰이는 해결책 또한 광고다. 우선 광고로 사용자를 모으고, 모은 사용자에게 광고를 보여줘서 수익을 창출한다. <strong>광고를 볼 사용자를 모으기 위해 광고를 집행하는 셈</strong>이다. 조회수를 노리는 사업자가 스스로 광고주를 겸하면서, 컨텐츠의 저품질화가 광고의 저품질화로 전이한 것이다.</p>

<p>극단적인 예시로 양산형 모바일 퍼즐게임을 살펴보자. 이 앱들은 일반 퍼즐 게임과 달리 난이도를 비합리적으로 높인다. 풀이에 실패하거나 아이템을 쓰려면 광고를 시청해야 하는데, 그 광고로 유사한 퍼즐게임을 홍보한다. 겉보기엔 똑같이 생긴 퍼즐이지만 교묘하게 이름만 바꿔서 출시하는 케이스도 있다. 이렇게 설치된 게임은 앱 스토어 상단에 위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본래는 재미로 경쟁해야 할 게임들이 단순히 광고를 표시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한 모습이다.</p>

<p>양산형 퍼즐게임들은 극단적인 예시일 뿐, 광고로 수익을 내는 수많은 기업들 또한 유사한 유혹에 빠지기 쉽다. 이렇게 &#39;광고용 광고&#39;는 본질적인 기능을 제공하지 않아 사용자의 피로도를 더욱 높인다. 우리가 온라인 광고를 보면서 &#39;흥미롭다. 구매하고 싶다&#39;라는 욕구보다 &#39;빨리 넘겨버리고 싶다&#39;는 충동이 드는 이유는 &#39;광고용 광고&#39;에 어느샌가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p>

<p>안타깝게도 구글은 저품질 광고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이용했다. 대표적으로 Youtube Premium을 출시하며 저품질 광고를 넘기고 싶은 사용자를 오히려 수익화 대상으로 삼았다. 그 결과, 가입하지 않은 일반 사용자는 더 많은 저품질 광고에 노출되었다. 소비자들은 플랫폼 사용을 불편해하고, &#39;광고를 위한 광고&#39; 시장에 참여한 기업들은 극심한 마케팅 출혈경쟁에 빠졌다. 이제 구글은 양쪽 모두에게서 수익을 창출한다.</p>

<h3 id="gemini가-쌀먹-생태계에-미치는-영향">Gemini가 &#39;쌀먹&#39;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h3>

<p>&#39;쌀먹&#39;이라는 용어는 본래 게임에서 시작되었다. 게임을 하면서 얻은 아이템을 현금으로 판매하여 수익을 얻는 행위를 일컫는데, 실질적인 효용을 생산하지 않으면서도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는 점에서 저품질 컨텐츠/광고 현상과 유사하다.</p>

<p>&#39;쌀먹&#39;의 관점에서, Gemini는 매우 전략적인 아이템이다. Gemini의 발전으로 구글의 광고 시스템에 붙은 &#39;쌀먹&#39; 컨텐츠 개발자들은 더욱 기세등등할 것이다. 과거에는 클릭 유도용 블로그, 자극적인 썸네일, 양산형 게임을 개발하기 위해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했다. 하지만 Gemini와 같은 생성형 AI는 이마저도 자동화할 수 있다.</p>

<p>이를 방증하듯 AI를 활용한 Youtube, 블로그 수익 창출에 관한 강의가 범람하고 있다. 이들 강의는 생성형 AI를 사용해 큰 노력없이도 쏠쏠한 부수입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하며, 자동화한 컨텐츠 공장이 지속 가능한 불로소득을 창출할 것이라 주장한다.</p>

<p>주장의 신빙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미 상위 검색 결과를 AI로 생성한 컨텐츠가 차지하는 일은 부지기수며, Youtube에도 AI로 생성한 영상이 늘어나고 있다. Play Store에선 &#39;개발자&#39;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앱 심사가 어려워질 정도이다. 물론 중요한 것은 컨텐츠를 제작한 방법이 아니라, 결과물의 품질이다. AI로 생성한 컨텐츠라도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즐거움을 준다면 괜찮다. 하지만 여러 설문조사가 이야기하듯 AI slop은 사용자를 더욱 피로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p>

<p>구글은 Gemini 토큰을 판매하며 소비자와 광고주 뿐만 아니라 크리에이터라는 플랫폼의 마지막 주체마저 수익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만약 구글이 이번에도 저품질의 컨텐츠를 필터링하지 않고, 암묵적으로 승인하며 Gemini 토큰을 판매한다면 플랫폼의 신뢰도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p>

<h2 id="결론-지속-가능한-플랫폼을-만들기-위해서">결론: 지속 가능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서</h2>

<p>개인적으로 인터넷 발전의 역사에서 온라인 광고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온라인 광고 시스템은 정보의 접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었으며, 유용한 정보 전달에 큰 역할을 해냈다. 하지만 Youtube Premium의 대성공을 보자면 온라인 광고 기반 생태계가 진정 지속 가능한지, 우리의 인터넷 생활이 갈수록 불편해졌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p>

<p>생성형 AI는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 물론 아직까지 Youtube의 대체재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경쟁자가 등장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광고가 소비자에게 피로를 주는 상황에서 생성형 AI로 저품질 컨텐츠까지 양산된다면, 소비자가 구글 플랫폼을 이전처럼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p>

<p>아이러니하게도 조회수를 노리는 저품질 컨텐츠와 그것을 홍보하기 위한 저품질 광고, 컨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소모되는 생성형 AI 토큰, 불편한 광고를 피하려는 소비자의 심리는 모두 구글의 수익으로 이어졌다. 이는 재무적으로 이득이므로 주주들은 환영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플랫폼의 지속 가능성과 인터넷의 황폐화를 장기적인 안목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p>

<p>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구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구글 뿐이다. 플랫폼에서 큐레이션 알고리즘은 모든 이해관계자의 만족을 조정하는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컨텐츠 평가 기준, 보상 구조, 수수료 산정 방식 등 중대한 의사결정들을 재검토해야만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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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s://blog.jongheon.cc/gugeuli-judohan-ssalmeogyi-sesang-jisog-ganeungseongeun</guid>
      <pubDate>Fri, 26 Jun 2026 15:01:42 +0000</pubDate>
    </item>
    <item>
      <title>나의 Linux 데스크탑 사용기 - 사용기 겸 추천하는 글</title>
      <link>https://blog.jongheon.cc/nayi-linux-deseukeutab-sayonggi-sayonggi-gyeom-cuceonhaneun-geul</link>
      <description>&lt;![CDATA[작성: 2026년 6월 4일&#xA;!--more--&#xA;&#xA;Linux를 쓰는 사람이 있어?&#xA;&#xA;Linux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진 OS라는 것이 분명하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보면 당연하다. 우선 스마트폰 시장의 72%를 차지하는 Android는 Linux 커널 위에서 동작한다. 또한, 우리가 매일 접속하는 온라인 서비스의 서버, 클라우드 인프라, 업무 시스템, 자동화 설비, 심지어는 학술용 슈퍼컴퓨터도 Linux가 대세다.&#xA;&#xA;물론 데스크탑 시장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가 접근하는 데스크탑 시장의 70%는 Windows, 20%는 Mac OS가 점유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리눅스의 전세계 데스크탑 점유율은 약 5%로 알려져 있고, 그마저도 국내에서는 1%대에 그친다. (참고차 적어두자면 우리나라 인구 중 제주도민이 약 1.3% 정도 된다.)&#xA;&#xA;상황이 이렇다 보니 Linux 사용자에 대한 오해도 많다. Linux에 대해 특수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나 해커들, 심지어는 &#39;홍대병&#39; 걸린 괴짜들이나 쓰는 OS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을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소수 집단에 대해 갖는 편견이 그렇듯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xA;&#xA;나는 이 글을 통해 내 개인적인 Linux(데스크탑) 사용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조금이나마 Linux 데스크탑 사용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람이다.&#xA;&#xA;(익숙치 않은 사람을 위해 - Linux를 쓴다는게 무슨 뜻일까?) Linux 커널은 OS의 핵심 엔진 같은 개념이다. 엔진만 가지고는 자동차를 움직일 수 없듯이, OS도 커널만 가지고 움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개발자들이 Linux 커널에 각종 프로그램을 더해 &#39;배포판&#39;이라는 것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39;Linux를 쓴다&#39;라고 하면 이러한 배포판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대표적인 배포판으로 Android, Ubuntu, Linux Mint 같은 것들이 있다)&#xA;&#xA;라즈베리파이에서 Raspbian 사용&#xA;&#xA;맨 처음 데스크탑용 리눅스를 사용한 경험은 라즈베리파이를 통해서였다. 고등학생 때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을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라즈베리파이 같은 소형 보드 컴퓨터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39;연구&#39;라는 핑계로 몇 개 사서 노는 게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2019년에는 &#34;Raspbian&#34;이라는 전용 OS가 있어서 설치할 수 있었다. &#xA;&#xA;당시만해도 라즈베리파이는 RAM이 1GB도 되지 않는, 성능이 아주 낮은 기기였다. 그래서 Raspbian OS에서는 간단한 Python Script를 실행하거나 GPIO를 통해 센서와 모터를 제어하는 작업을 했다. &#xA;&#xA;다만 일상적인 용도로 쓰기에는 기기의 성능이 부족했기에 진지하게 사용하지는 못했다. Linux를 체험만 해본 정도였다. 그래도 평생 윈도우 PC를 사용하던 나에게는 전혀 다른 UI(메뉴, 프로그램, 알림, 음향효과, 커서 모양)가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xA;&#xA;Linux를 쓰게 된 이유: 노트북 옵션 타협&#xA;&#xA;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보통 서버를 관리할 때 Linux를 사용했다. 서버용으로는 큰 고민없이 Ubuntu를 설치해서 사용했던 것 같다.&#xA;&#xA;Linux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부터이다. 이는 매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다가올 복학을 준비하면서 새 노트북이 필요했던 나는 Lenovo 사의 Thinkpad 제품군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Thinkpad는 나름 고가의 제품이기에 옵션 타협이 중요했다. 가장 큰 고민은 RAM이었다. RAM을 32GB로 맞추게 되면 노트북 가격이 160만원 정도였는데, 이때문에 RAM을 16GB로 낮추어야 할지 고심했다. 하지만 RAM 32GB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RAM을 높이는 대신 Windows 11 라이센스 16만원을 아껴보기로 했다.&#xA;&#xA;Windows 11 라이센스가 없으니 사실상 내게 주어진 옵션은 Linux 뿐이었다. 그때부터 Linux 배포판을 찾아보고,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웹페이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xA;&#xA;Arch Linux 도전기&#xA;&#xA;Arch Linux 배포판은 Linux 사용자들에겐 매우 특별한 배포판이다. 앞서 설명했듯 &#39;배포판&#39;은 기본 Linux 커널에 유용한 프로그램을 더 얹어서 묶어놓은 것인데, Arch Linux라는 것은 거의 기본 커널에 가까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단점이 매우 명확하다.&#xA;&#xA;장점: 프로그램이 가볍다. 불필요하게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없이, 내가 필요한 것만 설치해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스터마이징이 매우 자유롭다. 내가 원하는 설정, 프로그램 조합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 &#xA;&#xA;단점: 세팅할 것이 많다. 음향 드라이버 같이 일반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 조사하고 설정해야 한다. 결국은 자기만의 OS 세팅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사용 도중 생기는 문제를 고쳐 줄 사람도 나 혼자이다(내 설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데이터가 없으니 AI도 모른다!). &#xA;&#xA;간단히 말해 코어한 Linux 사용자들을 위한 배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Arch Linux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1) 기왕 RAM을 늘렸으니 불필요한 소프트웨어 없이 내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싶었고 2) 한 번 쯤은 코어한 세팅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xA;&#xA;실제로 세팅 과정은 글로 읽는 것 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Arch Wiki에는 설치부터 대중적인 세팅, 프로그램 추천, 일반적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커뮤니티도 친절해서 문제가 생기면 다같이 고민해주는 분위기였다.&#xA;&#xA;나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Hyprland라는 Window Manager를 설치했다. Noctalia Shell이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설치하여 꽤 쓸만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대로 복학해도 충분히 학교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xA;&#xA;예상치 못한 문제, Fedora로 옮겨가기&#xA;&#xA;하지만 내 Arch Linux는 복학 첫날에 문제를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 이유는 휴학한 사이 바뀌어버린 학교 와이파이 시스템에 있었다.&#xA;&#xA;일상적으로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과정을 다시 떠올려보자. 디바이스의 와이파이 기능을 켜면, 기기는 주변의 와이파이 신호를 검색하고 화면에 그 목록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연결하려는 와이파이를 선택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비밀번호가 맞으면 연결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연결에 실패한다.&#xA;&#xA;내 Arch Linux 세팅은 이런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쓰는 데 무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학교 와이파이는 달랐다. 새롭게 바뀐 학교 와이파이는 &#34;아이디&#34;와 비밀번호를 같이 요구했다. 내가 설치했던 Noctalia Shell에는 &#34;아이디&#34; 입력 기능이 구현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와이파이 목록에서 학교 와이파이를 선택하더라도, &#34;아이디&#34;를 입력하는 UI가 표시되지 않았다....&#xA;&#xA;물론 해결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UI가 없는 것일 뿐, 네트워크 관리자 자체는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터미널을 열어서 관련된 명령어를 입력해주면 연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런 명령어를 전부 외우고 있을 리도 없고, 인터넷 연결이 안된 상태였으니 검색도 어려웠다.&#xA;&#xA;그날 저녁 나는 OS를 재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3달간 동고동락한 세팅을 지우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OS를 내 마음대로 커스텀하면 더 자유로운 컴퓨터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내가 기계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xA;&#xA;조금 더 쉬운 길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Arch Linux 대신 Fedora 배포판을 선택했다.&#xA;Fedora + KDE 사용기&#xA;&#xA;Fedora도 Linux 배포판 중 하나이다. Arch Linux에 비하면 커스텀 자유도가 부족할 수 있지만, 여전히 Windows나 Mac에 비하면 충분하다. Arch Linux에 비해 Fedora가 가지는 장점은 일반적으로 인기있는 데스크탑 세팅을 포함해서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세팅 중에서 &#39;KDE&#39;라는 옵션을 선택했다.&#xA;&#xA;사실 Arch Linux에도 KDE를 설치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Arch Linux에 KDE를 설치한다 하더라도 다양한 부속품을 내가 신경써서 설정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반면 Fedora는 &#39;일단 무리없이 돌아가는&#39; 상태의 초기 세팅을 제공해주었다.&#xA;&#xA;Fedora를 나에게 맞게 커스텀하는 과정은 조금 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더이상 수백 줄의 yml 파일과 소규모 개발자 디스코드, 소중한 1페이지짜리 공식 문서와 씨름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 유틸리티가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설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xA;&#xA;Fedora KDE 조합은 아직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고, 솔직히 주변에 권하고 싶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집에 있는 Windows 11 노트북도 듀얼부팅으로 Linux 환경을 설치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Linux 환경의 장단점을 아래에서 작성해보겠다.&#xA;Linux 사용에 아쉬운 점&#xA;&#xA;앞서 말했듯 국내 데스크탑 Linux 점유율은 약 1% 내외로, 글로벌 5%에 비하면 꽤 낮다. 아마도 갈라파고스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몇 가지 문제를 겪을 수 있었다.&#xA;아쉬운 점 1. OTT 화질 문제&#xA;우선 고화질 OTT 시청이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Netflix는 480p 화질이 최대이다. 배포판이 다양한 Linux 특성상 OTT 제공업체가 DRM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즉, Linux에 고화질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 불법 복제를 막기 어렵다고 한다). 다만 이미 Youtube에 가면 고화질 클립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Linux에서 화질 제한을 해서 불법 복제가 막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문은 들지만 어쩔 수 없다....&#xA;&#xA;아쉬운 점 2. Linux 버전이 없는 일부 상용 소프트웨어&#xA;&#xA;그리고 일부 상용 소프트웨어는 Linux 버전이 없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톡이나 증권사 HTS들, 그리고 고려대학교 온라인 시험용 소프트웨어가 있다. 특정 프로그램을 쓰면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킬 수 있기는 한데 이런 과정 자체가 불편하다.&#xA;&#xA;Microsoft Office 대신 Libre Office를 쓰는 것처럼 대체 프로그램이 있으면 괜찮지만, 증권사 HTS처럼 마땅한 대체품이 없을 수도 있다.&#xA;&#xA;참고로 게임은 Steam에서 Linux 지원을 해주어서 문제가 없었다.&#xA;&#xA;개인적으로 생각하는 Linux를 써보면 좋을 이유&#xA;&#xA;장점 1. 방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xA;&#xA;Linux 소프트웨어는 정말 많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프트웨어가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으며 놀랍게도 서로 호환된다. 빅테크는 자사 제품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포맷(파일, 네트워크 등)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해당 기업 제품에 종속되어버리고, 경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Linux 소프트웨어들은 다르다.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발하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선택지가 있다.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것도 자유롭다.&#xA;&#xA;특히 배포판별로 패키지 매니저(apt, dnf, yay 등)가 있어서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하기가 쉽다. Windows도 winget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케이스를 보기는 어려웠다. &#xA;&#xA;가장 만족한 소프트웨어로는 NewsFlash(RSS 피드 리더), Yakuake(터미널), KPatience(솔리테어 게임)이 있다.&#xA;&#xA;장점 2. 자유도&#xA;&#xA;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Windows나 Mac OS에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이 자유도이다. 이런 상용 OS를 쓰면 내가 구매한 기계임에도 빅테크가 설정한 대로 사용하도록 만든다. 누군가는 &#34;적응하면 편해&#34;라고 말하지만, 애초에 사람이 기계에 적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Fedora KDE의 경우 UI와 창 규칙 등 요소를 마음대로 커스텀할 수 있다. 사용자는 메뉴바와 작업 관리자, 제스처, 타이틀바 디자인과 동작을 취향껏 고를 수 있다.&#xA;&#xA;Mac와 Window 모두 자사 프로그램(Copilot, Apple Music)을 억지로 설치하고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Linux 환경에서는 그럴 유인이 없다.&#xA;&#xA;심지어는 KDE Connect를 쓰면 Mac에서 iPhone을 제어하는 것처럼 Linux에서 Android를 제어하도록 할 수도 있고, Moonlight 소프트웨어를 써서 iPad를 휴대용 모니터로 쓸 수도 있다. &#xA;&#xA;장점 3. 해외 소프트웨어 경험 및 전망&#xA;&#xA;대한민국은 소프트웨어 면에서 상당히 갈라파고스화 되어있다. 아직도 공동인증서, Active X가 필요한 곳이 남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HWP 포맷처럼 독자적인 규격을 쓰기도 한다.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쓰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다. 지도, eBook, 휴대폰 인증, 심지어는 웹 서비스인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도 그렇다.&#xA;&#xA;갈라파고스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은 외국의 소프트웨어 환경을 경험해보면 국내 소프트웨어도 많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xA;&#xA;EU는 최근 정치적으로 미국 소프트웨어와의 디커플링을 준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오픈소스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정부는 공공기관에서 Linux를 사용하도록 전환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유럽 개발자들이 오픈소스와 Linux 진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Linux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앞으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xA;&#xA;(유럽 여행은 비싸지만 유럽식 소프트웨어 탐방은 무료다!)&#xA;&#xA;]]&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작성: 2026년 6월 4일
</p>

<h1 id="linux를-쓰는-사람이-있어">Linux를 쓰는 사람이 있어?</h1>

<p>Linux는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가진 OS라는 것이 분명하다.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알고보면 당연하다. 우선 스마트폰 시장의 72%를 차지하는 Android는 Linux 커널 위에서 동작한다. 또한, 우리가 매일 접속하는 온라인 서비스의 서버, 클라우드 인프라, 업무 시스템, 자동화 설비, 심지어는 학술용 슈퍼컴퓨터도 Linux가 대세다.</p>

<p>물론 데스크탑 시장의 모습은 다르다. 우리가 접근하는 데스크탑 시장의 70%는 Windows, 20%는 Mac OS가 점유하고 있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리눅스의 전세계 데스크탑 점유율은 약 5%로 알려져 있고, 그마저도 국내에서는 1%대에 그친다. (참고차 적어두자면 우리나라 인구 중 제주도민이 약 1.3% 정도 된다.)</p>

<p>상황이 이렇다 보니 Linux 사용자에 대한 오해도 많다. Linux에 대해 특수한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나 해커들, 심지어는 &#39;홍대병&#39; 걸린 괴짜들이나 쓰는 OS라고 상상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인식을 반박할 생각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소수 집단에 대해 갖는 편견이 그렇듯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p>

<p>나는 이 글을 통해 내 개인적인 Linux(데스크탑) 사용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조금이나마 Linux 데스크탑 사용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람이다.</p>

<p>(익숙치 않은 사람을 위해 – Linux를 쓴다는게 무슨 뜻일까?) Linux 커널은 OS의 핵심 엔진 같은 개념이다. 엔진만 가지고는 자동차를 움직일 수 없듯이, OS도 커널만 가지고 움직일 수는 없다. 그래서 여러 개발자들이 Linux 커널에 각종 프로그램을 더해 &#39;배포판&#39;이라는 것을 만든다. 일반적으로 &#39;Linux를 쓴다&#39;라고 하면 이러한 배포판 중 하나를 사용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된다. (대표적인 배포판으로 Android, Ubuntu, Linux Mint 같은 것들이 있다)</p>

<h1 id="라즈베리파이에서-raspbian-사용">라즈베리파이에서 Raspbian 사용</h1>

<p>맨 처음 데스크탑용 리눅스를 사용한 경험은 라즈베리파이를 통해서였다. 고등학생 때는 경제적으로 독립을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데스크탑이나 노트북을 구매하기가 어려웠다. 대신 라즈베리파이 같은 소형 보드 컴퓨터는 가격이 저렴했기 때문에 &#39;연구&#39;라는 핑계로 몇 개 사서 노는 게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2019년에는 “Raspbian”이라는 전용 OS가 있어서 설치할 수 있었다.</p>

<p>당시만해도 라즈베리파이는 RAM이 1GB도 되지 않는, 성능이 아주 낮은 기기였다. 그래서 Raspbian OS에서는 간단한 Python Script를 실행하거나 GPIO를 통해 센서와 모터를 제어하는 작업을 했다.</p>

<p>다만 일상적인 용도로 쓰기에는 기기의 성능이 부족했기에 진지하게 사용하지는 못했다. Linux를 체험만 해본 정도였다. 그래도 평생 윈도우 PC를 사용하던 나에게는 전혀 다른 UI(메뉴, 프로그램, 알림, 음향효과, 커서 모양)가 상당히 흥미롭게 느껴졌다.</p>

<h1 id="linux를-쓰게-된-이유-노트북-옵션-타협">Linux를 쓰게 된 이유: 노트북 옵션 타협</h1>

<p>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보통 서버를 관리할 때 Linux를 사용했다. 서버용으로는 큰 고민없이 Ubuntu를 설치해서 사용했던 것 같다.</p>

<p>Linux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부터이다. 이는 매우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다가올 복학을 준비하면서 새 노트북이 필요했던 나는 Lenovo 사의 Thinkpad 제품군을 눈여겨 보고 있었다. Thinkpad는 나름 고가의 제품이기에 옵션 타협이 중요했다. 가장 큰 고민은 RAM이었다. RAM을 32GB로 맞추게 되면 노트북 가격이 160만원 정도였는데, 이때문에 RAM을 16GB로 낮추어야 할지 고심했다. 하지만 RAM 32GB를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고, RAM을 높이는 대신 Windows 11 라이센스 16만원을 아껴보기로 했다.</p>

<p>Windows 11 라이센스가 없으니 사실상 내게 주어진 옵션은 Linux 뿐이었다. 그때부터 Linux 배포판을 찾아보고,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소개하는 웹페이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p>

<h1 id="arch-linux-도전기">Arch Linux 도전기</h1>

<p>Arch Linux 배포판은 Linux 사용자들에겐 매우 특별한 배포판이다. 앞서 설명했듯 &#39;배포판&#39;은 기본 Linux 커널에 유용한 프로그램을 더 얹어서 묶어놓은 것인데, Arch Linux라는 것은 거의 기본 커널에 가까운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단점이 매우 명확하다.</p>

<p>장점: 프로그램이 가볍다. 불필요하게 돌아가는 소프트웨어 없이, 내가 필요한 것만 설치해서 실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커스터마이징이 매우 자유롭다. 내가 원하는 설정, 프로그램 조합을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다.</p>

<p>단점: 세팅할 것이 많다. 음향 드라이버 같이 일반적으로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들까지 조사하고 설정해야 한다. 결국은 자기만의 OS 세팅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사용 도중 생기는 문제를 고쳐 줄 사람도 나 혼자이다(내 설정은 내가 제일 잘 안다. 데이터가 없으니 AI도 모른다!).</p>

<p>간단히 말해 코어한 Linux 사용자들을 위한 배포판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Arch Linux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2가지인데 1) 기왕 RAM을 늘렸으니 불필요한 소프트웨어 없이 내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싶었고 2) 한 번 쯤은 코어한 세팅을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p>

<p>실제로 세팅 과정은 글로 읽는 것 만큼 복잡하지는 않았다. Arch Wiki에는 설치부터 대중적인 세팅, 프로그램 추천, 일반적으로 생기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자세히 소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관련 커뮤니티도 친절해서 문제가 생기면 다같이 고민해주는 분위기였다.</p>

<p>나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Hyprland라는 Window Manager를 설치했다. Noctalia Shell이라는 프로그램을 같이 설치하여 꽤 쓸만한 환경을 구축할 수 있었다. 이대로 복학해도 충분히 학교 생활이 가능할 것 같았다.</p>

<h1 id="예상치-못한-문제-fedora로-옮겨가기">예상치 못한 문제, Fedora로 옮겨가기</h1>

<p>하지만 내 Arch Linux는 복학 첫날에 문제를 예상치 못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 이유는 휴학한 사이 바뀌어버린 학교 와이파이 시스템에 있었다.</p>

<p>일상적으로 와이파이를 연결하는 과정을 다시 떠올려보자. 디바이스의 와이파이 기능을 켜면, 기기는 주변의 와이파이 신호를 검색하고 화면에 그 목록을 보여준다. 사용자는 연결하려는 와이파이를 선택하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비밀번호가 맞으면 연결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연결에 실패한다.</p>

<p>내 Arch Linux 세팅은 이런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집에서나 카페에서나 와이파이를 연결해서 쓰는 데 무리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학교 와이파이는 달랐다. 새롭게 바뀐 학교 와이파이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같이 요구했다. 내가 설치했던 Noctalia Shell에는 “아이디” 입력 기능이 구현되어있지 않았다. 그래서 와이파이 목록에서 학교 와이파이를 선택하더라도, “아이디”를 입력하는 UI가 표시되지 않았다....</p>

<p>물론 해결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UI가 없는 것일 뿐, 네트워크 관리자 자체는 문제가 없으니 말이다. 터미널을 열어서 관련된 명령어를 입력해주면 연결이 가능했을 것이다. 다만 내가 그런 명령어를 전부 외우고 있을 리도 없고, 인터넷 연결이 안된 상태였으니 검색도 어려웠다.</p>

<p>그날 저녁 나는 OS를 재설치하기로 마음먹었다. 무려 3달간 동고동락한 세팅을 지우는 데는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았다. OS를 내 마음대로 커스텀하면 더 자유로운 컴퓨터 생활이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였지만, 오히려 내가 기계에 맞춰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p>

<p>조금 더 쉬운 길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에, Arch Linux 대신 Fedora 배포판을 선택했다.</p>

<h1 id="fedora-kde-사용기">Fedora + KDE 사용기</h1>

<p>Fedora도 Linux 배포판 중 하나이다. Arch Linux에 비하면 커스텀 자유도가 부족할 수 있지만, 여전히 Windows나 Mac에 비하면 충분하다. Arch Linux에 비해 Fedora가 가지는 장점은 일반적으로 인기있는 데스크탑 세팅을 포함해서 설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세팅 중에서 &#39;KDE&#39;라는 옵션을 선택했다.</p>

<p>사실 Arch Linux에도 KDE를 설치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Arch Linux에 KDE를 설치한다 하더라도 다양한 부속품을 내가 신경써서 설정해주어야 했을 것이다. 반면 Fedora는 &#39;일단 무리없이 돌아가는&#39; 상태의 초기 세팅을 제공해주었다.</p>

<p>Fedora를 나에게 맞게 커스텀하는 과정은 조금 더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더이상 수백 줄의 yml 파일과 소규모 개발자 디스코드, 소중한 1페이지짜리 공식 문서와 씨름하면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 유틸리티가 아니라 응용 프로그램 설정에 집중할 수 있었다.</p>

<p>Fedora KDE 조합은 아직까지는 매우 만족하고 있고, 솔직히 주변에 권하고 싶을 정도로 안정적이다. 집에 있는 Windows 11 노트북도 듀얼부팅으로 Linux 환경을 설치해주고 싶을 정도이다. Linux 환경의 장단점을 아래에서 작성해보겠다.</p>

<h1 id="linux-사용에-아쉬운-점">Linux 사용에 아쉬운 점</h1>

<p>앞서 말했듯 국내 데스크탑 Linux 점유율은 약 1% 내외로, 글로벌 5%에 비하면 꽤 낮다. 아마도 갈라파고스와 연관되어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몇 가지 문제를 겪을 수 있었다.</p>

<h2 id="아쉬운-점-1-ott-화질-문제">아쉬운 점 1. OTT 화질 문제</h2>

<p>우선 고화질 OTT 시청이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Netflix는 480p 화질이 최대이다. 배포판이 다양한 Linux 특성상 OTT 제공업체가 DRM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즉, Linux에 고화질 영상을 보여주는 경우 불법 복제를 막기 어렵다고 한다). 다만 이미 Youtube에 가면 고화질 클립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Linux에서 화질 제한을 해서 불법 복제가 막아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의문은 들지만 어쩔 수 없다....</p>

<h2 id="아쉬운-점-2-linux-버전이-없는-일부-상용-소프트웨어">아쉬운 점 2. Linux 버전이 없는 일부 상용 소프트웨어</h2>

<p>그리고 일부 상용 소프트웨어는 Linux 버전이 없을 수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카오톡이나 증권사 HTS들, 그리고 고려대학교 온라인 시험용 소프트웨어가 있다. 특정 프로그램을 쓰면 윈도우용 소프트웨어를 실행시킬 수 있기는 한데 이런 과정 자체가 불편하다.</p>

<p>Microsoft Office 대신 Libre Office를 쓰는 것처럼 대체 프로그램이 있으면 괜찮지만, 증권사 HTS처럼 마땅한 대체품이 없을 수도 있다.</p>

<p>참고로 게임은 Steam에서 Linux 지원을 해주어서 문제가 없었다.</p>

<h1 id="개인적으로-생각하는-linux를-써보면-좋을-이유">개인적으로 생각하는 Linux를 써보면 좋을 이유</h1>

<h2 id="장점-1-방대한-소프트웨어-생태계">장점 1. 방대한 소프트웨어 생태계</h2>

<p>Linux 소프트웨어는 정말 많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프트웨어가 곳곳에서 개발되고 있으며 놀랍게도 서로 호환된다. 빅테크는 자사 제품을 사용하게 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포맷(파일, 네트워크 등)을 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사용자는 해당 기업 제품에 종속되어버리고, 경쟁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어려워진다. Linux 소프트웨어들은 다르다. 표준적인 가이드라인에 맞춰 개발하기 때문에, 동일한 기능을 하는 다양한 소프트웨어 선택지가 있다. 오픈소스이기 때문에 입맛에 맞게 개조하는 것도 자유롭다.</p>

<p>특히 배포판별로 패키지 매니저(apt, dnf, yay 등)가 있어서 여러 프로그램을 설치하기가 쉽다. Windows도 winget을 강화하고 있지만 일상적으로 쓰는 케이스를 보기는 어려웠다.</p>

<p>가장 만족한 소프트웨어로는 NewsFlash(RSS 피드 리더), Yakuake(터미널), KPatience(솔리테어 게임)이 있다.</p>

<h2 id="장점-2-자유도">장점 2. 자유도</h2>

<p>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Windows나 Mac OS에 가지는 가장 큰 불만이 자유도이다. 이런 상용 OS를 쓰면 내가 구매한 기계임에도 빅테크가 설정한 대로 사용하도록 만든다. 누군가는 “적응하면 편해”라고 말하지만, 애초에 사람이 기계에 적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Fedora KDE의 경우 UI와 창 규칙 등 요소를 마음대로 커스텀할 수 있다. 사용자는 메뉴바와 작업 관리자, 제스처, 타이틀바 디자인과 동작을 취향껏 고를 수 있다.</p>

<p>Mac와 Window 모두 자사 프로그램(Copilot, Apple Music)을 억지로 설치하고 삭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Linux 환경에서는 그럴 유인이 없다.</p>

<p>심지어는 KDE Connect를 쓰면 Mac에서 iPhone을 제어하는 것처럼 Linux에서 Android를 제어하도록 할 수도 있고, Moonlight 소프트웨어를 써서 iPad를 휴대용 모니터로 쓸 수도 있다.</p>

<h2 id="장점-3-해외-소프트웨어-경험-및-전망">장점 3. 해외 소프트웨어 경험 및 전망</h2>

<p>대한민국은 소프트웨어 면에서 상당히 갈라파고스화 되어있다. 아직도 공동인증서, Active X가 필요한 곳이 남아있는 것은 물론이고 HWP 포맷처럼 독자적인 규격을 쓰기도 한다. 카카오톡은 국내에서 쓰지 않는 사람이 없지만 해외에서는 사용할 일이 없다. 지도, eBook, 휴대폰 인증, 심지어는 웹 서비스인 인터넷 커뮤니티나 포털 사이트도 그렇다.</p>

<p>갈라파고스화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쯤은 외국의 소프트웨어 환경을 경험해보면 국내 소프트웨어도 많이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p>

<p>EU는 최근 정치적으로 미국 소프트웨어와의 디커플링을 준비하고 있고, 이에 따라 오픈소스 대안을 탐색하고 있다. 프랑스와 스페인 정부는 공공기관에서 Linux를 사용하도록 전환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유럽 개발자들이 오픈소스와 Linux 진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Linux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앞으로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p>

<p>(유럽 여행은 비싸지만 유럽식 소프트웨어 탐방은 무료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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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07 Jun 2026 16:13:13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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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보충역의 의무복무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title>
      <link>https://blog.jongheon.cc/bocungyeogyi-daecebogmureul-jungdanhaeya-haneun-iyu</link>
      <description>&lt;![CDATA[2025년 4월 8일 작성&#xA;2026년 3월 3일 최종 수정 및 게시&#xA;&#xA;!--more--&#xA;저는 지난 23개월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습니다. 편입까지 3개월의 인턴 기간을 거쳤으니 총 26개월을 근무한 셈입니다. 이전에 작성해두고 올리지 못했던 글을 이제라도 공유하려 합니다.&#xA;&#xA;서론: 글을 작성하는 이유&#xA;나는 이 글을 게시할 계획이다. 지금은 신분상 불이익이나 제약이 있어 올리지 않지만. 2026년 3월 3일에 나는 이 글을 게시할 것이다. &#xA;&#xA;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누군가 가르쳐줄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진심으로, 우리 보충역 제도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xA;&#xA;보충역 의무복무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xA;&#xA;나는 보충역에 기초군사훈련/예비군훈련을 제외한 의무 부과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통해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법이 생긴 문화적 요인을 나름대로 짚어보았다.&#xA;&#xA;보충역이란 법적으로는 &#34;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으나, 현역병에 편입되지 않고 유사시에 현역병으로 충당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소집 및 훈련에 임하는 병력&#34;을 말한다. 대략 10% 내외의 남성이 보충역 판정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군생활을 하기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된다.&#xA;&#xA;보충역 판정을 받으면 보통 사회복무요원(흔히 말하는 &#39;공익&#39;)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다. 3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행정기관, 요양시설이나 몇몇 중소기업 등 병무청이 지정한 비군사적인 복무지에서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일하는 것이다. &#xA;&#xA;1. 징병제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xA;&#xA;징병제의 도입 목적을 고려한다면 징병된 인력은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옳다. 특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 참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xA;&#xA;우리는 북한의 전쟁 위협 때문에 징병제를 시행한다. 북한의 전쟁 위협은 국민의 삶과 국가 시스템에 큰 위험요소이므로, 전쟁 억제를 위해 대규모의 군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xA;&#xA;그런데 보충역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국방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은 군에서 복무하지 않는다. 행정적으로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다. 예를 들어 군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군사재판도 받지 않는다.&#xA;&#xA;우리는 요양시설에서 짐을 옮기고, 관공서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길을 안내하고, 민간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고치기 위해 징병제를 시행한 것인가?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분류시킨 보충역 인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고 국군이 강해지지 않는다. 보충역 인원을 비군사적 업무에 복무시킨다는 제도에는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xA;&#xA;2.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며, 양질의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xA;&#xA;나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처럼 &#39;저렴한 노동자&#39;의 공급이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xA;&#xA;일반적으로 기업은 훌륭한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해 임금, 복리후생, 근무환경, 조직문화 등 다방면으로 경쟁한다. 노동시장에서 매력적인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영입함으로서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합격시킨 근로자가 경쟁 회사를 선택하거나 퇴사율이 너무 높다면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진다.&#xA;&#xA;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산업기능요원 채용 시장에는 병무청이 허용한 기업들만 참여한다. 즉, 대부분의 기업은 산업기능요원을 채용할 수 없으므로 대기업을 비롯한 유력 경쟁자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구직자는 을의 위치를 자처하고 있어서 퇴사를 하지 않고, 부당한 처우나 갑질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퇴사율이 높은 회사라도 별다른 근무환경 개선 없이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활용한 운영이 가능하다.&#xA;&#xA;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산업기능요원이 기업 입장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1) 복무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장기 근속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2) 복무자들의 주 목표는 복무 기간을 채우는 것이므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책임감이 약하다. (3) 별도로 복무 관리와 서류 작업 등 운영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마이너스다.&#xA;&#xA;결국 산업기능요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회사는 (1) 일반 직원의 근속 기간이 23개월보다 짧거나 비슷하며 (2) 책임감이 약한 근로자라도 상관없이 필요한 곳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산업기능요원을 주로 채용할 것이라면 (3) 복무 관리의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이런 기업은 근로자의 능력이 아닌 노력만 착취하는 데 능숙하며 흔히 &#39;블랙 기업&#39;이라 불린다. 이들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기형적인 제도 덕분에 근로자를 착취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시장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지 않는다.&#xA;&#xA;특정 기업 및 기관이 국가의 병역 자원을 횡령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둔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에게 저렴한 노동자를 무한정 공급하면 &#39;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39;가 가능하다는 괴상한 발상이다. 산업기능요원을 뽑는 블랙기업과, 규모가 너무 작아 병역지정업체가 되지 못한 신흥 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몇몇 기업을 돕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착취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xA;&#xA;3. 현역 군인의 &#39;박탈감&#39;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 고통의 평준화&#xA;&#xA;내가 생각하기에 보충역 관련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현역 군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한 이상 개인의 희생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를 위해 자기 인생을 수 년간 희생했는데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씨가 보충역에게 튀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xA;&#xA;&#34;&#34;&#34;&#xA;산업기능요원은 특혜를 받고 있다. 일반 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려 하지 마라. 병무청을 비롯해 일반적인 사회인들, 심지어는 옆에 앉은 동료들도 여러분이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우를 바란다면 신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여럿 민원을 넣는다. 그러니 눈높이를 동료 근로자가 아니라 현역 군인 및 사회복무요원들 기준에 맞춰라. 그보다 편하게 있을 생각하지 마라.&#xA;&#34;&#34;&#34;&#xA;&#xA;2024년 6월 12일에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산업기능요원 신규 편입 교육 도중 들은 말이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가 있더라도, 현역 군인보다는 편할 것이니 더 많은 &#39;특혜&#39;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군인이 지하철 앉아서 간다고 민원을 넣으면 주의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는 군대처럼, 산업기능요원이 편히 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병무청은 더 불편하게 있도록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xA;&#xA;복무하는 도중 &#34;한 달 일하면 하루 연차도 쓰고, 출퇴근도 하고, 직장인 월급을 받는다니 좋겠다&#34;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한 달 일하면 최소 하루는 연차를 쓸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일을 하면 급여를 받는 것은 정말 기본이다. &#xA;&#xA;그렇다. 복무자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39;특혜&#39;이며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살 정도의 일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나은 환경에서 복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39;특혜&#39;를 받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희생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명분도, 사회적 이익도 불분명한 희생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부연구생을 하고,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26개월을 &#39;월급 안 밀려서 부러운 직장&#39;에서 보냈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xA;&#xA;현역 군인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보충역에 의무 부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역 장병들은 군대에서 수 년간 헌신하는데, 보충역은 기초군사교육만 수료한다면 박탈감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1) 그래서 지금은 박탈감이 없는가?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복무기간이 긴데, 이 정도면 충분히 박탈감이 없겠는가? (2) 과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인가? &#xA;&#xA;결론&#xA;&#xA;나는 보충역 자원에 대해서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등 다년간의 복무를 요구하는 제도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퇴사하지 못하는 근로자로 지낸 791일간 수백 번 고민하여 내린 일관된 결론이다. 징병제의 목적에 맞게, 건강상 가능한 인원은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이외의 의무는 불필요하다.&#xA;&#xA;우리의 보충역 관련 제도는 &#39;국방의 의무&#39;라는 그럴싸한 허울 아래 착취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실은 일부 기관 및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39;특혜&#39;와 &#39;꿀&#39;은 근무환경의 개선 없이도 저렴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특정 시설, 기업, 기관에게 주어진 것이다. 국가는 이들이 병역 자원을 마음껏 횡령할 수 있도록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이나 대가를 묻지 않는다. 그 결과 노동시장이 왜곡되고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는 등 암묵적인 비용을 사회 구성원 전부가 나누어 지불하고 있다. &#xA;&#xA;현역 군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보충역도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복무자의 희생과 헌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친구들과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면 &#39;어떤 부대/어떤 보직&#39;은 꿀이니, 가능하면 거기로 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괜찮은 선택지가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이지만, 과연 그 곳이 정말로 달콤한 꿀 같을까? 자기 삶과 자유를 몇 년간 희생하는 사람이 진정 꿀맛같이 달달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 &#xA;]]&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25년 4월 8일 작성
2026년 3월 3일 최종 수정 및 게시</p>



<p>저는 지난 23개월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습니다. 편입까지 3개월의 인턴 기간을 거쳤으니 총 26개월을 근무한 셈입니다. 이전에 작성해두고 올리지 못했던 글을 이제라도 공유하려 합니다.</p>

<h2 id="서론-글을-작성하는-이유">서론: 글을 작성하는 이유</h2>

<p>나는 이 글을 게시할 계획이다. 지금은 신분상 불이익이나 제약이 있어 올리지 않지만. 2026년 3월 3일에 나는 이 글을 게시할 것이다.</p>

<p>모두가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비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토론할 준비가 되어있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누군가 가르쳐줄 수도 있다.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나는 진심으로, 우리 보충역 제도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p>

<h2 id="보충역-의무복무를-중단해야-하는-이유">보충역 의무복무를 중단해야 하는 이유</h2>

<p>나는 보충역에 기초군사훈련/예비군훈련을 제외한 의무 부과를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글을 통해 논증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악법이 생긴 문화적 요인을 나름대로 짚어보았다.</p>

<p>보충역이란 법적으로는 “현역으로 복무할 수 있으나, 현역병에 편입되지 않고 유사시에 현역병으로 충당하기 위하여 필요에 따라 소집 및 훈련에 임하는 병력”을 말한다. 대략 10% 내외의 남성이 보충역 판정을 받는다고 알려져 있다. 일반적으로 군생활을 하기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해당된다.</p>

<p>보충역 판정을 받으면 보통 사회복무요원(흔히 말하는 &#39;공익&#39;)이나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다. 3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은 다음 행정기관, 요양시설이나 몇몇 중소기업 등 병무청이 지정한 비군사적인 복무지에서 의무 복무 기간 동안 일하는 것이다.</p>

<h2 id="1-징병제의-목적에-부합하지-않는-제도">1. 징병제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제도</h2>

<p>징병제의 도입 목적을 고려한다면 징병된 인력은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는 것이 옳다. 특히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 참여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p>

<p>우리는 북한의 전쟁 위협 때문에 징병제를 시행한다. 북한의 전쟁 위협은 국민의 삶과 국가 시스템에 큰 위험요소이므로, 전쟁 억제를 위해 대규모의 군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p>

<p>그런데 보충역에게 부과되는 의무는 국방과 전혀 관계가 없다.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은 군에서 복무하지 않는다. 행정적으로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다. 예를 들어 군법의 적용을 받지 않으므로 군사재판도 받지 않는다.</p>

<p>우리는 요양시설에서 짐을 옮기고, 관공서에서 서류를 정리하고, 출근길 지하철역에서 길을 안내하고, 민간 소프트웨어의 버그를 고치기 위해 징병제를 시행한 것인가? 건강이 안 좋다는 이유로 분류시킨 보충역 인원에게 의무를 부과한다고 국군이 강해지지 않는다. 보충역 인원을 비군사적 업무에 복무시킨다는 제도에는 아무런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p>

<h3 id="2-공정한-경쟁을-방해하며-양질의-고용-창출을-저해한다">2.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며, 양질의 고용 창출을 저해한다</h3>

<p>나는 사회복무요원이나 산업기능요원처럼 &#39;저렴한 노동자&#39;의 공급이 경제 발전을 심각하게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기 때문이다.</p>

<p>일반적으로 기업은 훌륭한 근로자를 채용하기 위해 임금, 복리후생, 근무환경, 조직문화 등 다방면으로 경쟁한다. 노동시장에서 매력적인 기업은 유능한 인재를 영입함으로서 조직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합격시킨 근로자가 경쟁 회사를 선택하거나 퇴사율이 너무 높다면 회사의 운영이 어려워진다.</p>

<p>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은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산업기능요원 채용 시장에는 병무청이 허용한 기업들만 참여한다. 즉, 대부분의 기업은 산업기능요원을 채용할 수 없으므로 대기업을 비롯한 유력 경쟁자가 크게 줄어든다. 또한, 구직자는 을의 위치를 자처하고 있어서 퇴사를 하지 않고, 부당한 처우나 갑질에도 대응하기 어렵다. 따라서 퇴사율이 높은 회사라도 별다른 근무환경 개선 없이 산업기능요원 제도를 활용한 운영이 가능하다.</p>

<p>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산업기능요원이 기업 입장에서도 그다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선 (1) 복무 기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장기 근속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2) 복무자들의 주 목표는 복무 기간을 채우는 것이므로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나 책임감이 약하다. (3) 별도로 복무 관리와 서류 작업 등 운영비용이 필요하다는 것도 마이너스다.</p>

<p>결국 산업기능요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회사는 (1) 일반 직원의 근속 기간이 23개월보다 짧거나 비슷하며 (2) 책임감이 약한 근로자라도 상관없이 필요한 곳이 대부분이다. 어차피 산업기능요원을 주로 채용할 것이라면 (3) 복무 관리의 비용 부담도 줄어든다. 이런 기업은 근로자의 능력이 아닌 노력만 착취하는 데 능숙하며 흔히 &#39;블랙 기업&#39;이라 불린다. 이들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기형적인 제도 덕분에 근로자를 착취하면서도 책임을 지지 않으며, 시장에 양질의 일자리를 공급하지 않는다.</p>

<p>특정 기업 및 기관이 국가의 병역 자원을 횡령하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논의는 제쳐둔다. 가장 큰 문제는 기업에게 저렴한 노동자를 무한정 공급하면 &#39;국가산업의 육성-발전과 경쟁력 제고&#39;가 가능하다는 괴상한 발상이다. 산업기능요원을 뽑는 블랙기업과, 규모가 너무 작아 병역지정업체가 되지 못한 신흥 소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우리는 선택받은 몇몇 기업을 돕기 위해, 젊은 청년들을 착취하도록 내버려두고 있다.</p>

<h3 id="3-현역-군인의-박탈감-에-대한-잘못된-해결책-고통의-평준화">3. 현역 군인의 &#39;박탈감&#39;에 대한 잘못된 해결책: 고통의 평준화</h3>

<p>내가 생각하기에 보충역 관련 논의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은 현역 군인에 대한 처우와 인식이 매우 나쁘다는 것이다. 징병제를 채택한 이상 개인의 희생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희생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를 위해 자기 인생을 수 년간 희생했는데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면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불씨가 보충역에게 튀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해본다.</p>

<p>”“”
산업기능요원은 특혜를 받고 있다. 일반 노동자와 같은 취급을 받으려 하지 마라. 병무청을 비롯해 일반적인 사회인들, 심지어는 옆에 앉은 동료들도 여러분이 특혜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슷한 처우를 바란다면 신고 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이 여럿 민원을 넣는다. 그러니 눈높이를 동료 근로자가 아니라 현역 군인 및 사회복무요원들 기준에 맞춰라. 그보다 편하게 있을 생각하지 마라.
“””</p>

<p>2024년 6월 12일에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산업기능요원 신규 편입 교육 도중 들은 말이다.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가 있더라도, 현역 군인보다는 편할 것이니 더 많은 &#39;특혜&#39;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다. 군인이 지하철 앉아서 간다고 민원을 넣으면 주의하라고 지시가 내려오는 군대처럼, 산업기능요원이 편히 있다고 민원이 들어오면 병무청은 더 불편하게 있도록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p>

<p>복무하는 도중 “한 달 일하면 하루 연차도 쓰고, 출퇴근도 하고, 직장인 월급을 받는다니 좋겠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근로기준법에는 한 달 일하면 최소 하루는 연차를 쓸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게다가 일을 하면 급여를 받는 것은 정말 기본이다.</p>

<p>그렇다. 복무자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39;특혜&#39;이며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을 살 정도의 일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나은 환경에서 복무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39;특혜&#39;를 받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희생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명분도, 사회적 이익도 불분명한 희생을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에서 공부하고, 학부연구생을 하고, 혹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26개월을 &#39;월급 안 밀려서 부러운 직장&#39;에서 보냈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p>

<p>현역 군인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보충역에 의무 부과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역 장병들은 군대에서 수 년간 헌신하는데, 보충역은 기초군사교육만 수료한다면 박탈감이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반문하고 싶다. (1) 그래서 지금은 박탈감이 없는가? 보충역은 현역 군인보다 복무기간이 긴데, 이 정도면 충분히 박탈감이 없겠는가? (2) 과연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을 위해 고통을 평준화하는 것이 우리가 낼 수 있는 최선의 해결책인가?</p>

<h3 id="결론">결론</h3>

<p>나는 보충역 자원에 대해서 사회복무요원, 산업기능요원 등 다년간의 복무를 요구하는 제도가 전면 폐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퇴사하지 못하는 근로자로 지낸 791일간 수백 번 고민하여 내린 일관된 결론이다. 징병제의 목적에 맞게, 건강상 가능한 인원은 기초군사훈련 및 예비군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이외의 의무는 불필요하다.</p>

<p>우리의 보충역 관련 제도는 &#39;국방의 의무&#39;라는 그럴싸한 허울 아래 착취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실은 일부 기관 및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 <strong>소위 말하는 &#39;특혜&#39;와 &#39;꿀&#39;은 근무환경의 개선 없이도 저렴한 노동자를 구할 수 있는 특정 시설, 기업, 기관에게 주어진 것이다.</strong> 국가는 이들이 병역 자원을 마음껏 횡령할 수 있도록 두고 제대로 된 사회적 책임이나 대가를 묻지 않는다. 그 결과 노동시장이 왜곡되고 기업 간 공정한 경쟁이 저해되는 등 암묵적인 비용을 사회 구성원 전부가 나누어 지불하고 있다.</p>

<p>현역 군인이 느끼는 박탈감은 보충역도 같이 공유하는 것이다. 복무자의 희생과 헌신을 제대로 인식하고 배려해야 한다. 친구들과 군대 이야기를 하다 보면 &#39;어떤 부대/어떤 보직&#39;은 꿀이니, 가능하면 거기로 가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괜찮은 선택지가 있다는 점은 참 다행이지만, 과연 그 곳이 정말로 달콤한 꿀 같을까? 자기 삶과 자유를 몇 년간 희생하는 사람이 진정 꿀맛같이 달달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을 거라 생각한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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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id>https://blog.jongheon.cc/bocungyeogyi-daecebogmureul-jungdanhaeya-haneun-iyu</guid>
      <pubDate>Tue, 03 Mar 2026 14:15:19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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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완벽하지 않은 글을 쓰려고 결심한 이유</title>
      <link>https://blog.jongheon.cc/wanbyeoghaji-anheun-geuleul-sseuryeogo-gyeolsimhan-iyu</link>
      <description>&lt;![CDATA[2025년 4월 22일 작성 시작&#xA;2026년 2월 1일 작성 완료&#xA;!--more--&#xA;글을 쓰지 못하겠다.&#xA;나는 지난 몇 년 간 제대로된 글 하나를 완성하지 못했다. 책임 있는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정리한 짧은 글 하나 완성하지 못한다는 건 참 애석한 일이다. &#xA;&#xA;글을 쓰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살면서 정리할 만한 생각,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정말 많았다. 이런 단발적인 생각을 제대로 보관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포기했었다. 그 결과 초안만 가득히 쌓인 폴더를 보유하게 되었다.&#xA;&#xA;글을 왜 완성할 수 없었는가&#xA;내가 글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수학의 영향이 크다. 엄밀히 말해서 내 글쓰기는 증명에 가까웠다. 마치 수학의 증명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들이 완벽하게 논증되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된 용어의 정의와 합의된 공리 체계가 필요하다.&#xA;&#xA;예를 들어 &#39;나는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39;라는 간단한 표현을 살펴보자. &#xA;우선 &#39;피자&#39;란 무엇인지 모호하다. 단순히 재료만 살펴보더라도 &#39;하와이안 피자&#39;가 &#39;피자&#39;인지에 대해 첨예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xA;시간적 요소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운지 몇 달이 지나 상해버린 피자도 &#39;피자&#39;일까? &#xA;그리고 항상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는 것일지도 의문이다. 만약 지난 일주일간 매일 피자를 먹은 뒤에도 피자를 치킨보다 선호할 것인가? 저 짧은 표현에는 이같은 각오가 들어있지 않다.&#xA;&#xA;결국 &#39;나는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39;라는 한 문장을 엄밀하게 이야기하려면 1. 내가 의도하는 피자, 치킨의 정의와 2. 선호 관계가 성립되는 특정한 제약 조건이 필요하다. 즉, &#39;오늘 점심을 굶었고 지난 2주간 피자를 먹지 않은 나는, 향후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금일 저녁 메뉴로 감자가 들어간 피자를 어떤 종류의 후라이드 치킨보다 선호한다.&#39; 같이 표현하는 것이 낫다.&#xA;&#xA;하지만 정말 &#39;완벽한&#39; 진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 파고들자면 위의 진술에도 문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증명 같은 글을 쓰려면, 소모적인 자기 교정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글을 계속 쓰고 지우면서, 말하려는 내용보다 소소한 표현에 매몰되는 이유이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것은 있지만 그에 필요한 전제를 나열하는 데 시간을 과하게 쏟았고, 지친 나머지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xA;&#xA;글쓰기의 목적은 소통&#xA;글을 증명처럼 쓰려는 태도는 표현을 제한했다. 글쓰기에서 증명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만약 반박의 여지가 없는 글쓰기가 어렵다면 어떤 글을 써야하는 것일까?&#xA;&#xA;인간이 만든 질서에서는 수학과 달리 합의된 공리가 없으므로, 주장 자체로는 &#39;참과 거짓&#39;을 구분할 수 없다. 즉, 내가 작성하는 글이 수학에서의 증명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xA;&#xA;&#39;공정한 대학 입시를 위해 수능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39;라는 주장은 &#39;참&#39;이면서도 &#39;거짓&#39;이다. 사람들은 공통된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이는 전제와 추론은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도구이지, &#39;참&#39;을 보장하는 절차가 될 수는 없다.&#xA;&#xA;글을 쓰는 이유는 지식을 타인에게 공유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고도의 불완전한 논증에 집착하기보다는, 비록 나의 생각과 가치를 솔직하고 정갈하게 표현하는 쪽이 더 목적에 부합하다. 허술한 부분은 토론과 소통을 통해 보완하면 그만이다.&#xA;&#xA;마치며&#xA;나는 앞으로 글을 쓸 때 다음의 조건을 명심하려 한다.&#xA;독자의 상식을 믿는다. 피자가 무엇인지 정의하면서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다.&#xA;글쓰기의 목적은 증명이 아니라 소통이다. 상세하고 엄밀한 논증은 논문에 작성한다.&#xA;비판을 수용한다. 건강한 토론에 열린 태도로 임한다.&#xA;&#xA;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책임 있는 지식인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불완전한 생각이라도 거침없이 내놓고 수정해나갈 수 있는 자세를 기른다면 좋겠다.]]&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2025년 4월 22일 작성 시작
2026년 2월 1일 작성 완료
</p>

<h2 id="글을-쓰지-못하겠다">글을 쓰지 못하겠다.</h2>

<p>나는 지난 몇 년 간 제대로된 글 하나를 완성하지 못했다. 책임 있는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으로서, 내 생각을 정리한 짧은 글 하나 완성하지 못한다는 건 참 애석한 일이다.</p>

<p>글을 쓰기 싫었던 것은 아니다. 살면서 정리할 만한 생각,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정말 많았다. 이런 단발적인 생각을 제대로 보관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글을 쓰려고 시도할 때마다 번번이 포기했었다. 그 결과 초안만 가득히 쌓인 폴더를 보유하게 되었다.</p>

<h2 id="글을-왜-완성할-수-없었는가">글을 왜 완성할 수 없었는가</h2>

<p>내가 글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수학의 영향이 크다. 엄밀히 말해서 내 글쓰기는 증명에 가까웠다. 마치 수학의 증명처럼, 생각하고 주장하는 것들이 완벽하게 논증되기를 바랬다. 그러기 위해서는 통일된 용어의 정의와 합의된 공리 체계가 필요하다.</p>

<p>예를 들어 &#39;나는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39;라는 간단한 표현을 살펴보자.
* 우선 &#39;피자&#39;란 무엇인지 모호하다. 단순히 재료만 살펴보더라도 &#39;하와이안 피자&#39;가 &#39;피자&#39;인지에 대해 첨예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 시간적 요소도 고려해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운지 몇 달이 지나 상해버린 피자도 &#39;피자&#39;일까?
* 그리고 항상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는 것일지도 의문이다. 만약 지난 일주일간 매일 피자를 먹은 뒤에도 피자를 치킨보다 선호할 것인가? 저 짧은 표현에는 이같은 각오가 들어있지 않다.</p>

<p>결국 &#39;나는 피자를 치킨보다 좋아한다&#39;라는 한 문장을 엄밀하게 이야기하려면 1. 내가 의도하는 피자, 치킨의 정의와 2. 선호 관계가 성립되는 특정한 제약 조건이 필요하다. 즉, &#39;<strong>오늘 점심을 굶었고 지난 2주간 피자를 먹지 않은 나는, 향후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 한 금일 저녁 메뉴로 감자가 들어간 피자를 어떤 종류의 후라이드 치킨보다 선호한다.</strong>&#39; 같이 표현하는 것이 낫다.</p>

<p>하지만 정말 &#39;완벽한&#39; 진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깊이 파고들자면 위의 진술에도 문제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증명 같은 글을 쓰려면, 소모적인 자기 교정의 늪에 빠져들게 된다. 내가 글을 계속 쓰고 지우면서, 말하려는 내용보다 소소한 표현에 매몰되는 이유이다. 나는 무언가 말하려는 것은 있지만 그에 필요한 전제를 나열하는 데 시간을 과하게 쏟았고, 지친 나머지 글쓰기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p>

<h2 id="글쓰기의-목적은-소통">글쓰기의 목적은 소통</h2>

<p>글을 증명처럼 쓰려는 태도는 표현을 제한했다. 글쓰기에서 증명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일까? 만약 반박의 여지가 없는 글쓰기가 어렵다면 어떤 글을 써야하는 것일까?</p>

<p>인간이 만든 질서에서는 수학과 달리 합의된 공리가 없으므로, 주장 자체로는 &#39;참과 거짓&#39;을 구분할 수 없다. 즉, 내가 작성하는 글이 수학에서의 증명과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p>

<p>&#39;공정한 대학 입시를 위해 수능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39;라는 주장은 &#39;참&#39;이면서도 &#39;거짓&#39;이다. 사람들은 공통된 기준이 아니라 각자의 가치관(공정이란 무엇인가)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덧붙이는 전제와 추론은 주장의 설득력을 높이는 도구이지, &#39;참&#39;을 보장하는 절차가 될 수는 없다.</p>

<p>글을 쓰는 이유는 지식을 타인에게 공유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고도의 불완전한 논증에 집착하기보다는, 비록 나의 생각과 가치를 솔직하고 정갈하게 표현하는 쪽이 더 목적에 부합하다. 허술한 부분은 토론과 소통을 통해 보완하면 그만이다.</p>

<h2 id="마치며">마치며</h2>

<p>나는 앞으로 글을 쓸 때 다음의 조건을 명심하려 한다.
* 독자의 상식을 믿는다. 피자가 무엇인지 정의하면서 작성하지는 않을 것이다.
* 글쓰기의 목적은 증명이 아니라 소통이다. 상세하고 엄밀한 논증은 논문에 작성한다.
* 비판을 수용한다. 건강한 토론에 열린 태도로 임한다.</p>

<p>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책임 있는 지식인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블로그를 통해서, 불완전한 생각이라도 거침없이 내놓고 수정해나갈 수 있는 자세를 기른다면 좋겠다.</p>
]]></content:encoded>
      <guid>https://blog.jongheon.cc/wanbyeoghaji-anheun-geuleul-sseuryeogo-gyeolsimhan-iyu</guid>
      <pubDate>Tue, 28 Oct 2025 12:28:43 +0000</pubDate>
    </item>
    <item>
      <title>네 번째 블로그를 시작하며</title>
      <link>https://blog.jongheon.cc/4beonjjae-beulrogeureul-sijaghamyeo</link>
      <description>&lt;![CDATA[블로그를 시작하는 것은 벌써 네 번째다.&#xA;&#xA;초등학생 때는 포켓몬 관련한 글을 쓰는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지금 읽어보면 부끄럽지만 나름 정성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xA;&#xA;이후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직접 블로그를 개발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수 차례 만들고 없애기를 반복했었다. 결국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블로그 보다는 &#39;개발&#39;에 주안점이 있었으니 성공으로 간주해도 될 수도 있겠다.&#xA;&#xA;이번에는 홈서버를 다루던 중 writefreely라는 도구를 발견하였는데, 미니멀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설치해 보았다. 가급적 글쓰기에 집중하는 블로그를 운영해보고 싶다. &#xA;&#xA;]]&gt;</description>
      <content:encoded><![CDATA[<p>블로그를 시작하는 것은 벌써 네 번째다.</p>

<p>초등학생 때는 포켓몬 관련한 글을 쓰는 블로그를 운영했었다. 지금 읽어보면 부끄럽지만 나름 정성을 들였던 기억이 있다.</p>

<p>이후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직접 블로그를 개발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 수 차례 만들고 없애기를 반복했었다. 결국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애초에 블로그 보다는 &#39;개발&#39;에 주안점이 있었으니 성공으로 간주해도 될 수도 있겠다.</p>

<p>이번에는 홈서버를 다루던 중 writefreely라는 도구를 발견하였는데, 미니멀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곧바로 설치해 보았다. 가급적 글쓰기에 집중하는 블로그를 운영해보고 싶다.</p>
]]></content:encoded>
      <guid>https://blog.jongheon.cc/4beonjjae-beulrogeureul-sijaghamyeo</guid>
      <pubDate>Sun, 26 Oct 2025 14:58:07 +0000</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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