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지만, 잘 싸웠다

작성: 2026년 7월 13일

졌지만, 잘 싸웠다

2023년 K리그1 7라운드 울산과 대전의 경기가 떠오른다. 당시 울산은 개막 7연승을 노리던 파죽지세의, '아무도 막을 수 없는' 팀이었다. 이전 시즌 우승팀의 자부심, 6경기 13득점 4실점의 경기력, 웃음기 가득한 팬들, 기세등등한 선수들까지 여러모로 최강팀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언론은 7라운드 시작 전부터 리그 사상 첫 개막 8연승 기록에 주목하였다. 그러니까 대전은 당연히 이기고(7연승), 8연승 기록도 꿈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팬들 역시 8라운드 동해안더비에서 포항을 잡고 8연승 기록을 볼 수 있겠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앞으로 지는 일은 없을 것만 같았다.

읽으면서 눈치챘겠지만, 그해 울산의 연승 기록은 6까지였다. 7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경기 초반 실점을 당하였고, 직후 투입된 김민혁이 활약하며 동점을 만들었지만, 전반전 막판 추가 실점을 하고 말았다. 후반전에 분전하였지만 그대로 경기가 마무리되며 결과는 2대1 패배로 끝났다. TV를 끄고서도 일주일 내내 골 찬스가 머릿속을 헤집을 정도로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이 경기를 울산의 최고 경기라고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고 본다. 물론 결과는 패배였고 연승 기록은 세우지 못했다. 하지만 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점골을 넣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팬들은 경기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으며, 선수들은 경기 종료 직전까지도 역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했다.

흔히 스포츠에서 진 팀을 격려하기 위해 '졌지만, 잘 싸웠다'고 말한다. 비록 패배하였으나, 경기에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대들은 열심히 경기했고 최선을 다했으니 결과에 낙담하지 말고,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날 울산은 졌지만, 잘 싸웠다. 승리했던 지난 6경기와 마찬가지로 좋은 경기력을 보였기에, 다음에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잘 싸우면 이겼을까?

비관하는 측에서는, '잘 싸웠으면 이겼겠지'라고 비판하며, '졌잘싸'는 그저 패배자의 정신승리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감독이 상대방에 맞춰서 다른 라인업을 꺼내야 했다거나, 부진한 특정 선수를 진작에 뺐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는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경기 시작 전에 상대의 전술을 알 수는 없다. 특정 선수가 부진할지 미리 알 수도 없다. 적어도 경기 직전까지, 혹은 경기 내부적으로도 좋은 판단을 내렸지만 결국은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

'잘 싸웠다'는 것이 반드시 '이긴다'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더 일반화된 표현으로는, '좋은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가시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는 1천원짜리 로또의 기대가치가 500원 언저리라는 것을 안다(몰랐다면 알아두자). 그러므로 로또를 구매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다. 한 장 구매할 때마다 500원씩 버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매주 누군가는 로또에 당첨되어서 수억 원의 당첨금을 가져간다. 하지만 그들이 당첨되었다고 해서, 로또 구매가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정말 희박한 확률로 당첨이 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계속 복권을 사서는 곤란하다. 단지 운이 좋았을 뿐, 다음에도 당첨이 된다는 보장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생각해보자. 누군가 번호를 찍어주면서 로또를 한 장 사볼 것을 권했는데, 나는 사양한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번호가 당첨번호였다면 이는 분명 나쁜 결과다. 구매했다면 수억 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나한테 돌아온 결과는 0원이기 때문이다. '속는 셈치고 사볼 걸'이라고 후회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로또 구매가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 1천원짜리 로또 한 장을 구매하면 실질적으로는 500원을 잃는 효과가 생긴다. 합리적으로 판단했음에도 나쁜 결과를 얻는 순간이다.

도대체 왜, 좋은 의사결정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못하는가? 애초에 의사결정을 잘했더라면 성과가 좋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둘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가 완벽한 정보를 가질 수 없어서다. 만약 내가 (합법적인 경로를 통해) 이번 주 로또 당첨 번호를 알아낸다면, 당연히 복권을 구매할 것이다. 한 장 아니고 여러 장 살 것이다. 왜냐하면 당첨 번호를 아는 이상, 로또 한 장의 기대가치는 500원이 아니라 수억 원이 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당첨 번호라는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로또 구매'라는 행동은 '좋은 의사결정'이 되고 늘 '좋은 결과'를 보장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당첨 번호를 절대 알 수 없다.

우리는 부족한 정보를 가지고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려 노력한다. 오늘 상대의 전술도, 특출나거나 부진한 선수도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최선의 라인업을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아쉬울 수는 있지만, 별개로 좋은 의사결정을 내렸었다면 과정은 '잘 싸웠다'며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좋은 과정을 지향하기

나는 울산의 7R 패배를 보고 '졌잘싸'라고 말하며, 관용적인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최근 스스로에게 많이 엄격해진 것 같다.

나쁜 결과를 얻으면 이전의 의사결정을 복기하면서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무엇을 달리했어야 하나' 고민하곤 한다. 잘못된 점을 찾으면 다행이다. 그걸 고치고, 다음부터는 잘 판단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원인을 모를 수도 있다. 당시에 알 수 있는 정보만 고려하면 합리적인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즉, 다시 돌아가도 이전과 똑같이 결정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때는 '운이 나빴다'라고 인정해야만 한다.

요즈음 태도를 보면 나의 목표가 너무 과한 느낌이다. 최대한 데이터를 끌어모아 '완벽한' 정보를 얻고 합리적으로 결정하면 모든 경기를 이기고, 최고의 결과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이는 이론상 불가능하다. 아무리 자료조사를 한들 로또 당첨번호를 알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내가 상황을 바꿀 수 있었어', '나는 완벽한 결정을 내릴 수 있어'라는 자신감의 표현으로도 들리지만, 자신감이 나를 괴롭혀서는 안된다.

과정과 결과 중 더욱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늘 과정이라고 답한다. 이유는 지속 가능성이다. 나쁜 과정을 통해서 얻은 좋은 결과는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다. 반면 결과가 나쁨에도 좋은 과정을 보였다면, 앞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스스로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실수할 수 있고, 최고의 의사결정을 하더라도 좋은 결과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결과론적인 리뷰는 고통스러울 뿐 더 좋은 의사결정으로 이끌지 않는다. 고민해서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라면, '졌지만, 잘 싸웠다'며 격려해야 한다. 그렇게 좋은 과정을 지향해야만이 진정한 좋은 결과도 기약할 수 있다.